[사설]무슨 근거로 나포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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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국과 일본이 아직 경계 합의를 보지 못한 일종의 '중간바다' 에서 조업하던 한국어선 2척을 일본이 나포한 것은 독선적 논리에 빠진 비우호적 행위다.

법적으로도 근거가 미약하고 한국어선에 대한 중국의 호혜적 조치에 비해서도 속좁은 행동이다.

일본은 지난번 한.일어업협정 발효 직전에도 며칠을 기다리지 못하고 한국어선들을 나포한 적이 있다.

일본은 그런 강경조치로 배타적 경제수역 (EEZ) 을 철저히 보호한다는 것을 자국 어민에게 과시하려는 것 같으나 이런 고려에만 빠진다면 이는 우호적 국제관계라는 큰 틀은 보지 않는 것이다.

문제가 된 바다는 중국과 일본이 어업협정을 협상하면서 양국의 잠정조치수역 (일종의 공동어로구역) 으로 설정한 곳이다.

이곳에서 제3국 어선이 어떻게 조업하느냐는 복잡한 문제다.

그런데 중.일어업협정은 아직 발효가 되지 않고 있으니 다른 논리로 이를 살펴야 한다.

협정발효 전이니 이곳은 현재로는 유엔 해양법상의 새로운 질서가 채 마련되지 않은 '충돌지역' 이다.

그럴 경우 제3국 어선이 조업하는 바다가 어느 나라에 가까우며, 그 나라와

제3국이 어떻게 협상하느냐가 관건이라 하겠다.

일본은 댜오위다오 (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 를 기점으로 경제수역의 경계를 주장하면서 한국어선이 머무른 곳이 자기네 바다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댜오위다오는 중국과 일본간에 영유권분쟁이 진행되는 곳이다.

때문에 이를 어느 나라 소속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다음의 기준은 오키나와섬이 되고 이럴 경우 한국어선이 머무르던 곳은 일본보다 중국쪽의 바다였다.

그러므로 한국이 제3국의 지위로 조업할 경우 상대해야 할 대상은 오히려 중국이라 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상대방 경제수역 내에서의 조업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중국은 한국어선을 단속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한국배가 있던 곳은 일본의 경제수역" 이라는 주장을 펴더라도 너무 조급하게 행동했다.

한.일어업협정에 따라 19일부터는 한국어선이 일정 규모 (통보한 범위내) 로 일본측 경제수역에서 조업하는 것이 보장되는 데도 며칠 앞서 나포라는 자극적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한국어선들은 그러잖아도 신한.일어업협정에 따라 일본해역에서의 조업량이 크게 줄어들어 상당수가 퇴출할 기로에 처해 있다.

한.중.일 바다의 새로운 질서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한국어민이다.

변화가 불가피하더라도 오랜 세월 현실로 굳어진 것을 바꾸는 데는 자신의 인내와 함께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난해 한.일 양국은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방일 (訪日) 외교로 21세기를 향한 동반자의 약속을 다진 바 있다.

동반의 중요한 축은 관용과 이해다.

포괄적인 고려 없이 상대국 어선을 나포하는 것은 근린 (近隣) 국가의 취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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