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막 오른 정기국회 … 제발 달라진 모습 보여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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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정기국회가 오늘 개회된다. 그러나 아직 의사일정조차 합의하지 못해 며칠간은 개점 휴업하지 않을 수 없다. 산적해 있는 과제들을 생각하면 규칙과 상식이 통하는 정상 국회가 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일정에 합의하지 못한 것은 국정감사 시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국회법 규정대로 9월 10일부터 하자고 하고, 민주당은 개각에 따른 장관 청문회 등을 마친 뒤 10월에 하자고 한다. 명분은 제각기 그럴듯하게 갖다 붙이지만 결국 10월 재·보궐선거를 유리하게 만들어보려는 정략에 불과하다.

이번 국회에는 그런 당리당략으로 움직이기엔 너무 큰 과제들을 안고 있다. 국회의장 산하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어제 개헌 연구안을 내놨다. 선거구제와 행정구역 개편 문제도 있고, 비정규직법 등 민생법안, 세제 개편을 포함한 예산 문제도 다른 해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다. 새로운 시대의 틀을 만드는 큰 작업들이다. 이런 과제를 풀어가야 할 국회가 초반부터 당리당략에 매달려 샅바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한나라당은 내년 상반기 개헌을 목표로 국회에 개헌특위를 설치하자고 한다. 이에 반해 민주당의 이강래 원내대표는 “국면전환용으로 국민을 현혹하기 위해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을 하려면 내년 지방선거 이전에 마무리하는 것이 옳다. 대통령 선거가 임박해지면 유력 후보들의 이해가 얽혀 정상적인 개헌 논의가 어렵게 된다. 지금 당장 한나라당이 개헌으로 국면을 바꿔야 할 만큼 중대한 위기에 봉착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개헌은 노무현 정부 말에 민주당이 적극 추진했던 사안이다. 그때도 “충분한 논의가 이뤄졌다”던 개헌을 이제 와서 다시 시간을 끌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더 이상 늦추면 결국 이번 정권에서도 개헌은 어렵게 된다.

선거구제 개편과 행정구역 개편도 쉬운 일이 아니다. 총선이 임박하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기득권을 버릴 자세가 안 돼 있다”(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고 예단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것 역시 지난 민주당 정권에서도 필요성을 인정했던 과제다. 여야 모두 강조하고 있는 민생문제도 마찬가지다. 서로 책임 공방만 벌이다 결국 대량해고 사태로 이어지고 만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이번 국회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사실상 3김 정치 시대를 마감한 이후 첫 국회다. ‘구시대의 막내’임을 자처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고인이 됐다. 일본 자민당의 몰락이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국회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준비해야 한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과거의 틀, 지역할거와 지역연합이라는 3김 정치의 구조를 더 이상 지속할 수는 없다. 국회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고, 합리적인 이성이 지배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야 없다 해도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만은 보여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