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본뜻 흔들리는 부실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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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에 다시 사 (邪)가 끼고 있다.

새 정권이 출범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 정권 아래서는 어느 재벌그룹이 발딱 일어서게 돼 있다느니, 어느 지역경제가 거덜나게 돼 있다느니, 과거 정권에서나 들리던 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정부부문의 구조개혁부터 그렇다.

당초 정부개혁의 취지는 방만한 조직을 도려내고 기능을 재조정해 정부경쟁력을 다시 일으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민간이 정부를 평가하는 초유의 시도를 하게 됐다.

그 시도가 채 열매를 맺기도 전에 좌초 위험에 처해 있다.

정부부처가 평가기관에 힘을 쓴다거나, '쇠밥그릇' 을 지키려는 정부부처들간의 힘겨루기와 정치권 로비가 예사롭지 않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러다간 앞으로 있을 정부조직개편이 결국은 분식 (粉飾)에 그칠 것이라고도 한다.

재벌의 구조개혁도 사정은 비슷하다.

재벌개혁의 당초 취지는 국가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과잉투자와 과잉부채, 과잉시설과 과잉고용을 과감히 도려내 당당한 국제경쟁기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율적인 시장경제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정부의 개입도 '시장실패' 를 치유하기 위한 필요악이려니 생각하고 참았다.

그러나 경제의 봄 소식 때문인지 구조개혁에 대한 관심은 눈 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누가 대기업의 새 주인이 될 것이라느니, 빅딜을 앞세워 특정 지역경제를 절단내려 한다느니, 해괴망측한 말들로 민심만 흉흉하다.

그러다 보니 " '경제.사회의 안정' 을 위해 정부와 재벌의 구조개혁을 여기서 그쳐야 하는 것 아니냐" 는 말을 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실업의 아픔과 지역경제의 어려움을 나몰라라 해서가 아니다.

이대로는 구조개혁이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니 다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위기의 질곡에서 나라를 구해내기 위해, 그것이 과잉시설이든 과잉고용이든 부실경제는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구조개혁의 원칙을 한시 바삐 되살려 놓아야 할 때다.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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