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의 글쓰기] '한국사이야기'펴낸 이이화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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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한국사 이야기 5~8권 (고려편)' (한길사.각권 9천5백원) 을 펴낸 역사문제연구소 고문 이이화 (62) 씨. 그의 머리 속에는 여전히 '고려' 가 가득한지 이렇게 얘기를 풀어냈다.

"고려는 단순한 귀족사회가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유례없이 단단한 사회체계를 구축한 나라였다. 자주성의 기반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과 생산의 토대형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재평가할 요소가 많다." 원론적으로 보면 그의 이번 저술은 그간 소홀히 다뤄졌던 고려시대를 통사형식으로 종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세부적으로는 이이화씨 다운 재미와 독특한 시각을 담고 있어 의미는 더하다. 가령 고려를 파탄으로 몰아넣었던 몽고침략에 대해 그는 "반대급부로 혈통을 중시하는 우리 농경사회에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유목민의 습성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 고 말하고 있다.

이런 대목들은 또 어떨까. "몽골의 고려침략 이후 귀족들은 만두 만드는 법을 배웠고 서민들은 설렁탕 (몽골어로 슐루 또는 실레) 을 끓여 먹었다.

" "고려의 부인.궁녀들은 말을 타고 나들이를 하거나 개경시내를 돌아다녔다." "이유없이 아내를 버린 관리는 유배됐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과거사의 아픈 부분까지 여과없이 드러냄으로써 교훈으로 만들어 간다.

그의 이번 저술은 고대편 4권에 이은 후속작이다. "지난해 6월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방 자택에 두번째 집필캠프를 차렸다. 현재는 외부와의 전화통화마저 사절한 채 3부작 '조선전기' 편을 쓰고 있다. " 그의 첫번째 캠프는 전북 장수에 있는 한길사 연수원 사택이었다.

서울에서의 대외활동과 잡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났다가 무려 3년을 거기서 보냈다. "하지만 그곳까지 사람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월명암이라는 암자에까지 숨어들어야 했다" 는 그의 고백에선 글쓰기의 고단함을 느끼게 한다.

이이화씨의 집필 습관은 무척 독특하다. 한밤중인 새벽 1시부터 아침 10시까지 집중적으로 글을 쓴다. 대신 대낮과 초저녁 두차례 잠에 빠진다. 사흘에 한번 꼴로 새벽녘에 혼자 소주 반병을 마신다. 긴장감을 조금 풀기 위해서다.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에는 끝이 없다. 말을 줄이고 인내를 해야한다는 채찍으로 집필실 앞에 '묵인당 (默認堂)' 이라는 간판까지 내걸 예정이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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