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개운찮은 법조비리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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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검찰이 발표한 대전 이종기 (李宗基) 변호사 법조비리 사건의 수사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개운치 않다.

대검과 대전지검이 총력을 기울여 한달 가까이 수사한 내용으로는 부실하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과연 이 정도의 비리를 가지고 온 나라가 떠들썩했는가 싶을 정도다.

수사 결과 이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사람은 李변호사와 전 사무장을 제외하면 전.현직 검찰 일반직 6명이 전부다.

그밖에 검찰과 경찰.법원.교도관 등 관련자는 징계회부나 소속기관 통보로 마무리됐다.

다만 일부 판.검사가 관행에 따라 전별금.떡값.향응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사표제출,징계위 회부, 인사 반영 등으로 불이익을 받게 됐다.

특히 소개비를 받은 판사나 검사는 한 명도 없었으며 감찰조사까지 했지만 李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이 부당하게 처리된 경우도 전혀 없었다는 것이 발표 요지다.

검찰 발표대로라면 李변호사 사건은 검찰 일반직들의 비리사건에 불과해 법

조비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역설적으로는 판.검사는 관행만 문제였을 뿐 사건 수임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결백이 입증된 것이다.

사건 의뢰 당사자이며 이번 수사를 지켜본 국민들이 이런 결론에 공감할 수 있을까. 벌써 검찰 일반직들이 이같은 처리에 대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반발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검사들에 대한 처리과정도 석연치 않다.

관심을 모은 심재륜 (沈在淪) 대구고검장의 경우만 보더라도 당초 검찰 수뇌부가 밝힌 혐의 사실에는 사건 소개 부분이 들어 있었으나 당사자들이 이를 공개적으로 부인한 때문인지 발표문에는 이 부분이 빠졌다.

또 沈고검장만 한회 1백여만원씩 10여회 1천만원 상당의 향응을 받은 것으로 돼 있고 다른 검사들의 혐의 사실에는 전혀 향응 사실이 들어 있지 않다.

현직 최고위 검찰 간부에 대한 수사 내용에 의문을 남기고 있으니 다른 사람의 수사는 오죽하겠는가.

다만 전별금.떡값.향응 등 이른바 법조계의 관행도 처벌 대상이 된다는 새 기준을 확립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커다란 수확이다.

명단이 통보된 법관들의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변호사들이 판사실 출입 때 관행이었던 이른바 '실비 (室費)' 등도 여기에 포함될지도 모른다.

김태정 (金泰政) 검찰총장은 사과문을 통해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고 새로운 윤리관과 직업의식을 확립하도록 하겠다" 고 다짐했다.

검찰총장이 법조 정화를 강조하며 사죄까지 한 광경은 비장한 느낌마저 들게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말보다는 실천이다.

검찰 총수가 국민들에게 사죄한 데 대해서는 모든 검찰 관계자들은 반성하고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한편 법무부도 이번 사건에 대한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이번에야말로 법조 비리 근절과 검찰의 체질 개선, 내부 개혁을 반드시 이룰 수 있는 근본적인 장치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沈고검장이 제기한 검찰의 독립성 강화를 위한 대책이 꼭 제시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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