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2국' 돌부처 폭발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2국
[제7보 (122~137)]
黑.이세돌 9단 白.이창호 9단

'왕위전 미스터리' 또는 '이창호 미스터리'로 불리는 사건은 122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이세돌9단이 대마의 안전을 위해 허리를 굽히기는커녕 운명에 맡기겠다는 식으로 나오자(흑▲) 미련없이 철퇴를 내린 것이다.

이창호9단과 수없이 싸워본 목진석8단은 "(이창호)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공격하더라도 척만 할 것"이라고 했다. 생각하면 이세돌의 도발은 흔한 것이고, 형세가 좋은 이창호가 공격을 보류하고 몸조심하는 것도 예정된 스토리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예상을 비웃듯 이창호는 122에 이어 124로 대마의 연결고리를 끊고 128의 독수로 흑의 눈을 파헤치며 '살(殺)의 바둑'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국에서의 인내, 그로 인한 역전패가 불씨였을까. 그때의 실패를 가슴 깊이 새긴 채 이를 악물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창호란 사람이 어떤 패배에 의해 자신의 승부호흡을 쉽사리 바꾸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돌부처'란 별명이 붙을 이유가 없다.

지구 내부의 용암이 떠오른다. 시뻘겋게 끓고 있지만 여간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마그마의 세계. 수천년에 한번 터져나오는 화산 폭발…. 이창호 내부에 깊숙이 숨어 있는 불 기운이 134의 단호한 절단에서 절정을 이루며 판 위에 쏟아진다.

구경꾼들은 말을 잊은 채 손에 땀을 쥐고 있다. 대마불사는 오래된 교훈이다. 그러기에 살의 바둑은 위태로운 것이며 공격자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당연히 고수의 취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 이창호의 기세는 136이 보여주듯 살기를 짙게 토해내고 있다.

137에서 드디어 이세돌의 가슴 섬뜩한 반격이 판 위에 쿵 떨어졌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