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이종기살생부'…'떡값' 인사들 물증 안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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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회오리를 몰고온 대전 변호사 수임비리 사건과 관련, 법조계 안팎에 '이종기 미스터리' 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李변호사가 구속된 뒤 나온 그의 언행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건에선 계좌추적 등의 물증이 아닌 李변호사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던 경우가 많아 그의 발언 의도에 관심과 의문이 더해지고 있다.

첫번째 미스터리는 "李변호사가 왜 증거가 없는 경우에도 여러 관련자의 이름을 털어놓았느냐" 다.

떡값.향응수수 사실이 드러난 판.검사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李변호사의 진술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특히 검찰 고위간부들이 이에 해당됐다.

검찰 특수부장 출신의 일류급 변호사인 李씨가 증거가 없으면 부인하면 그만이라는 법적 상식을 모를리 없다.

그런데도 관련자 이름을 마구 불었다.

심재륜 고검장에 대해 "沈고검장이 2차, 3차까지 술자리를 요구해 내 건강이 상했다" 고 진술한 부분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다분히 감정이 섞인 진술이기 때문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李변호사가 평소의 은원관계에 따라 대상자를 선별한 것 같다" 고 말했다.

그 경우 李변호사가 떡값.향응사실을 있는 그대로 다 말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커진다.

검찰은 수사 초기엔 李변호사와 학연으로 얽힌 검사들이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고교동창 등의 학연은 인맥형성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검찰 관계자는 "李변호사가 진짜 친한 사람들은 봐준 것 같다" 고 말했다.

李변호사가 변호인.가족 등과 만난 자리에서 한 발언들도 의아한 대목이 많다.

李변호사는 최근 면회온 측근에게 "내가 대전지역 판.검사들의 발목을 모두 잡고 있기 때문에 곧 시작될 재판은 나에게 유리하게 진행될 것"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뭔가 봐줬으니 그 보답이 있을 것" 이란 식의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사건이 이미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마당이고 누가 누굴 봐준다는 건 이미 불가능해져 버렸다는 사실을 李변호사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역시 비상식적이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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