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위법 불심검문에 맞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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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위자료 3백만원! 이혼 위자료가 아니다.

며칠전 경찰의 위법한 불심검문에 대해 법원이 인정해 준 손해배상금액이다.

어느 취업준비생에게 경찰은 소속과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무례하게 불심검문을 했다.

게다가 제시한 신분증을 부여잡고 가방속까지 열어 보라고 강요하던 끝에 가방을 뒤져본 후 "그러니까 취직도 못하지" 라는 비웃음까지 날렸다.

그런 잘못을 저지른 대가로 3백만원이 인정된 것이다.

지난해 11월에도 어느 경찰이 함부로 불심검문을 빙자해 대학생을 연행해 18시간동안 잡아 두었다가 혐의가 없어 다음날 오전 훈방조치하는 바람에 혼이 났다.

그 대학생은 다름아닌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법대생이었기 때문이다.

그 법대생은 변호사도 없이 손해배상을 청구해 위자료로 1백만원의 승소판결을 받아내 언론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인권운동사랑방' 이라는 단체에서 '법대로 하자! 불심검문' 이라는 가두캠페인을 벌여 불심검문의 문제점들을 시민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외에도 위법 불심검문에 대한 손해배상 승소사례가 여러번 있어 왔다.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 어느 거리에서는 또 다른 불심검문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당하는 사람의 십중팔구는 재수없이 기분 나쁜 일을 당했다고 푸념할뿐 이 어려운 경제시국에 몇백만원이나 되는 위자료를 거저 벌 수 있는 기회도 모른 채 체념해 버릴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도 자연스럽게 겪어 왔던 기분 나쁜 불심검문은 사실 대부분 위법한 것이다.

물론 불심검문이란 치안과 범죄예방을 담당하는 경찰관의 직무수행상 필요한 직무상 질문이다.

그래서 경찰관직무집행법이란 법률로서 보장한 것이다.

불심검문의 공익적 필요성을 부정해서는 안될 일이다.

다만 문제는 법에 맞느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권력이라는 우월적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인권이 침해될 여지가 크기 때문에 불심검문을 허용한 경찰관직무집행법조차 그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불심검문시 경찰관이 소속.이름.목적을 밝혀야 하고 죄를 범했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소지품검사는 흉기소지여부만 조사할 수 있고 그것도 외부를 손으로 만져서 확인하는 검사 (stop and frisk) 만 가능하다.

또 흉기소지가 의심스러워도 동의가 없으면 수색영장 없이 가방을 열어볼 수도 없다.

위법한 불심검문을 거절하는 것은 공무집행방해죄가 되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잘못된 불법적 관행을 지칭하는 대표적 슬로건이 바로 준법투쟁이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준법과 투쟁은 서로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준법이란 당연한 것인데 어떻게 투쟁수단이 될 수 있나.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준법투쟁이란 말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들리는 이유는 바로 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흔히 불심검문의 문제점에 대해 경찰에게는 전경이나 의경대원들에게 적법절차와 예절교육을 철저히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하거나 시민들에게는 개인적인 불쾌감으로 끝내지 말고 정당한 법적 대응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 전체에게 돌아갈 피해를 막아보자고 권고한다.

그러나 그동안 누차에 걸친 경찰의 재발방지 약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법한 불심검문은 반복돼 왔고 시민의 법적 대응은 뉴스가 될 정도로 드물다.

그만큼 정신.물질적 피해를 감수하면서 외로운 법적 투쟁을 하려면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손해배상사건에서 인정되는 위자료 승소금액은 그 사회의 민주질서에 대한 민도 (民度) 와 더불어 국가경제수준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승소금액이 너무나 적은 편이다.

특히 경찰의 위법한 불심검문이라는 고질적인 불법관행이 우리사회의 민주질서체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역기능적 비중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위법한 불심검문의 고질적 불법관행을 근절하려면 단순히 경찰에게 대책을 요구하고 시민에게 법적 대응을 권고하는 식의 공자님 말씀만으로는 곤란하다.

아예 1백만~3백만원 정도가 아닌 1천만~2천만원 정도의 충분한 위자료를 승소금액으로 인정함으로써 누구라도 경찰의 위법한 불심검문에 대해 손해배상청구를 하고 싶어할 만큼 현실적인 동기부여를 해줘야만 한다.

그래야만 고질적 불법관행에 대해 외로운 법적 투쟁을 결심하게 되는 초기 민주개척시민에 대한 응분의 배려가 될 것이고 불법관행의 껍질안에 안주해 있는 경찰의 의식을 깨우쳐 줄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고 생각된다.

임영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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