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천양희 '스무 고개'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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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가 넘어야 할 고개

그건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지요

한 고개 넘어 또 한 고개

웬 고개가 그렇게도 많은지요

우이령 넘고 우듬재 넘었는데

또 한 고개 남았다고 했지요

박달재 넘고 추풍령 넘었는데

또 한 고개 남았다고 했지요

웬 고개가 그렇게도 높은지요

새재 넘고 고모령 넘었는데

또 한 고개 남았다고 했지요

다섯고개 여섯고개 넘었는데

또 한 고개 남았다고 했지요

- 천양희 (千良姬.57) '스무 고개' 중

사물에 심상 (心象) 을 비추는가 하면 시대를 본성으로 읽는 시인인데 여기서는 삶의 고개 허위허위 넘어가는 것을 스무고개 수수께끼로 삼고 있는 듯. 어딘지 옛이야기 비슷하게 고투 (古套) 인데 그 안에서 사뭇 신랄하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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