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시각장애인 일어 강사 정찬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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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앗싸' 하지 마세요. 일본어로 아침은 '아사' 예요. " 20여명이 점자교재를 짚어가며 수업을 받고 있는 서울성북구동선동 성북 시각장애인 복지관. 감칠맛 나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는 정찬규 (30) 씨는 자신도 장애인이다.

지난 88년 병으로 오른쪽 시력을 잃었고 왼쪽 눈은 물체의 윤곽만 겨우 알아보는 수준이다.

비디오테이프 전화판매 등으로 시간을 보내던 정씨가 붙잡은 것은 일본어 공부. 뭔가 특기가 있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95년부터 학원에 나가면서 꾸준히 공부해 일본 신문을 술술 번역할 정도로 실력이 붙었다.

鄭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성북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주 2회 일본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하지만 강의가 진행될수록 시각장애인들이 마음에 걸렸다.

동선동 일대가 시각장애인 4백여명이 모여 사는 곳이라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는 이들 중 3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한달도 안돼 모두 그만두고 말았다.

칠판도 사전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鄭씨는 올해부터 장애인 전용 강좌를 주1회 따로 개설했다.

점자교재를 만들었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자극적인 표현' 을 개발해 시각효과를 대신했다.

수강생 김재금 (62.역술인) 씨는 "수업이 재미있어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끝난다" 며 鄭씨를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鄭씨의 목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일본어 교재를 만드는 것. 강의 준비용 유인물을 정리해 연말쯤 책을 낼 계획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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