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교관 망명사건 한.미에 책임전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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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네바 = 배명복 특파원] 북한은 최근 독일에서 발생한 북한 외교관 망명사건의 책임을 한국과 미국에 전가하며 4자회담의 진전을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요인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20일 오전 (현지시간) 제네바 유럽자유무역연합 (EFTA) 사무국에서 열린 4자회담 긴장완화분과위원회를 마치고 나온 이근 (李根) 북한 차석대표는 "조선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고 신뢰를 해치는 중대한 사건이 미국과 남조선에 의해 벌어진 데 대해 강력히 이의를 제기했다" 고 밝히고 "양국은 외교적 특권을 가진 우리 외교관을 백주에, 그것도 4자회담 개최 전날 유인.납치했다" 고 주장했다.

그는 "이는 미국과 남조선이 한반도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 라면서 "이 사건에 대한 양국 입장이 4자회담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 이라고 말했다.

한편 남북한과 미국.중국 등 4개국은 이날 긴장완화분과위와 평화체제분과위를 잇따라 열어 남북한의 수십년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구체적 논의에 착수했다.

평화체제분과위에서 한국 대표인 권종락 (權鍾洛) 외교부 북미국장은 남북한 당사국간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한 반면 북한 대표인 장창천 외무성 부국장은 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을 북.미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일관된 공식입장을 되풀이, 근본적 인식차를 드러냈다.

앞서 열린 긴장완화분과위에서 한국 대표인 유진규 (柳珍奎.육군 준장) 국방부 군비통제관은 군 당국간 직통전화 설치.군사훈련 사전통보.군인사 교환방문 등 초보적 수준의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우선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미.중 양국도 손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 순서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방법이라며 한국측 제안을 지지했다.

그러나 북한은 한반도 긴장의 근본원인은 주한미군이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면서 긴장의 근원적 원인부터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대표단의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순항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면서 "조기에 가시적 성과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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