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유학생 ‘빅3’ 한국 다시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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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총장은 발걸음이 무겁기로 유명하다. 유럽을 제외한 다른 나라 대학총장과 거의 만난 적이 없다. 한국의 대학 총장도 예외가 아니다. 다른 대학과 협력사업은 단과대나 학내 연구소가 직접 추진하기 때문이다. 미국 최고 대학이라는 자부심도 하버드대 총장의 행보를 신중하게 만들었다.

이장무 서울대 총장(左)과 드루 파우스트 미국 하버드대 총장이 25일(현지시간) 하버드대 총장실에서 두 학교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보스턴=정경민 특파원]

드루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과 이장무 서울대 총장의 25일(현지시간) 만남이 첫 회동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는 이유다. 하버드대가 서울대를 아시아 협력 파트너로 사실상 인정했다는 것이다. 하버드가 서울대와 손잡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동안 하버드대 안에선 중국으로 지나치게 기운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많았다. 균형을 잡아줄 새 파트너가 필요했는데, 일본은 국제화에 소극적이었다. 여기에다 하버드 내 외국인 학생수에서 한국(300여 명)은 캐나다·중국에 이어 3위로 올라섰다. 일본은 7위다. 하버드대로선 한국이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상대가 된 것이다. 하버드가 최근 동아시아 관련 연구소를 아시아센터로 모으면서 페어뱅크 중국학센터 밑에 있던 한국학 연구소를 독립기관으로 승격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대가 하버드와 손잡기로 한 것은 세계 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국제화가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더 이상 ‘한국 최고의 대학’이란 자부심에 젖어 있다가는 세계 유수 대학은 물론 국내 대학과의 경쟁도 어렵다는 위기 의식이 담겨 있다. 서울대가 경기도 시흥에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는 국제캠퍼스를 만들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대학 총장의 만남은 이 같은 분위기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에 따라 두 대학의 교류 폭은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질 역시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두 대학은 우선 역사학부터 교류를 확대할 전망이다.

파우스트 총장은 신문에 대한 깊은 애정도 보였다. 그는 “미국에선 최근 인터넷이 확산하면서 신문산업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나는 신문에 중독된 애독자라 신문산업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인터넷이 신문을 죽이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양교 총장의 대담 내용.

▶이 총장=요즘 한국에선 대학의 국제화가 화두다. 정부도 국제화 지원을 위한 예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과거 서울대는 국제화에 다소 소극적이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세계 각국 대학과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파우스트 총장=우리도 국제화 경험이 있다. 15~20년 전만 해도 이곳 학생들 역시 외국어를 배우는 데 소극적이었다. 외국어 공부를 별도의 부담으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외국어를 자발적으로 배우려는 학생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한 가지 언어밖에 못 하던 학생들이 입학한 후 여러 국가 언어를 배우고 있다. 한국어·중국어·일본어를 배우려는 학생도 부쩍 늘었다. 대부분 학생이 고교 때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를 배우기 때문에 하버드에 와서는 동아시아 언어를 배우려는 것 같다.

▶이 총장=서울대도 100% 영어로 강의하는 캠퍼스를 인천과 가까운 경기도 시흥에 세우려고 한다. 이곳을 서울대 국제화의 전초기지로 삼을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교수·학생을 유치할 예정이다. 하버드의 협력도 기대한다. 하버드 역시 동아시아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파우스트 총장=동아시아 연구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서도 서울대와의 협력관계가 중요하다. 우선 역사학에서 다양한 협력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총장=서울대는 규장각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엔 조선 왕조 500년을 기록한 실록이 보관돼 있다. 유엔 산하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하버드와의 협력을 위해 이곳에 있는 희귀 영인본 400권을 하버드에 기증하겠다.

▶파우스트 총장=소중한 자료를 고맙게 받겠다. 우리도 기념식을 준비하겠다.

보스턴=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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