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씨의 논문의미]구체적 통일대안 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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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97년 2월 북한노동당 비서 황장엽 (黃長燁.76) 씨가 망명해 왔을 때의 엄청난 충격을 우리는 기억한다.

많은 이들은 북한 최고의 이론가 黃씨의 망명 자체를 "이제 북한은 끝장" 이라는 말과 동일시할 정도였다.

아무튼 망명요청 당시 성명서에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민족을 위해 바치고 싶다" 고 천명한 바 있는 黃씨는 이러한 구상을 '평화통일전략' 이란 논문으로 구체화했다.

망명 2년의 결실인 셈이다.

'북한의 진실과 허위' '개혁과 개방' 등 지금까지 내놓았던 몇 편의 논문이 북한 김정일 (金正日) 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하는데 중점이 두어진데 반해 '평화통일전략' 에선 통일 대안 (代案) 을 제시하고 있다.

'평화통일전략' 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기 위하여 ^남한의 주체적 역할을 높이기 위하여 ^통일을 위한 외교전략 ^통일전망과 관련된 몇가지 문제 등 모두 5개의 장 (章) 으로 구성돼 있다.

黃씨는 북한의 무력도발을 막는데 주안점을 두면서 북한체제의 변화유도와 남한 내부의 통일노력 강화, 한반도 통일환경 조성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黃씨는 남북간에 무엇보다 절박한 문제는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금강산관광에 대해서는 "북한동포들에게 남한의 동포애를 전달함으로써 대남인식을 바로잡아주는데 좋은 기회가 될 것" 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黃씨는 이와 함께 남북분단이 장기화하면서 남한 내에서 통일의욕이 점차 약화되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또 국제담당비서를 지낸 해박한 국제감각을 토대로 黃씨는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주변 4강을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북한체제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黃씨가 김정일체제를 단순한 비판이나 붕괴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던 과거의 시각에서 벗어나 통일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실체' 로 북한을 인식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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