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나라,본업에도 충실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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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회 529호실 사태로 격앙된 여야의 대치상태가 여당 단독국회라는 파행 (跛行) 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이 본회의 참석과 법안심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이런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한나라당은 '정치사찰' 의혹 문제는 문제대로 계속 따지되 법안심의라는 국회 본업은 본업대로 충실히 해야 한다.

한나라당의 자세는 우선 명분과 논리상 맞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안기부직원의 정치정보 수집 등의 활동을 정치사찰이라고 규탄하면서 이를 행정부 권력의 의회민주주의 파괴로 규정하고 있다.

행정부가 권력을 남용해 입법부와 야당의 목을 조른다는 것이다.

의회민주주의가 의회의 권한과 의무를 충실히 지켜나가는 것이라면 여야가 국회에 참석해 법안을 심의하는 것도 의회민주주의의 중요한 본질이다.

입법부의 제1과제는 뭐니뭐니 해도 법안을 심의해 처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명분이 그렇거니와 현실적으로도 국회 밖보다는 법안심의 참여가 한나라당에 유리하다.

한나라당이 국회에 참석한다고 해서 당이 제기한 안기부 '정치사찰' 의혹의 중대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울러 국회참여로 해서 투쟁수단이 줄어들거나 약해지는 것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대정부질문 등을 활용하면 더욱 점잖고 효과적으로 문제의 해결을 촉구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5일 안기부장이 출석한 국회정보위에도 불참했는데 논리에서 밀리지 않는다면 안기부를 상대로 정정당당하게 문제를 추궁할 기회를 왜 스스로 포기하는가.

이번 임시국회는 지난해 12월의 정기국회가 여야 강경대치로 법안을 제대로 심의하지 못해 추가로 열린 것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도 법안심의에 열심히 임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한나라당은 7일 임시국회가 끝나면 또 다시 임시국회를 소집할 것이라고 한다.

눈앞에서 열리고 있는 국회에서는 시간을 허송하면서 무슨 면목으로 또 국회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이 이번 국회를 끝내 보이콧하면서 다음 임시국회를 또 소집한다면 이는 일하기 위한 국회가 아니라 검찰의 구속집행대상이 돼 있는 비리혐의 의원들을 회기 (會期) 를 이용해 보호하려는 '방탄국회' 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세상의 일에는 정해진 길과 방법이 있다.

안기부의 '정치사찰' 의혹을 규명하는 일은 검찰고발, 증거제시, 대국민 설명회, 국회의 조사권 추진, 대언론 홍보 등의 방법이 순리에 맞는다.

법안심의 거부는 거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민생과 개혁법안이 왜 거래대상이 돼야 하는가.

한나라당이 여당으로 참여한 과거의 정권들은 안기부를 운용해 지금보다 결코 못하지 않은 정치정보 수집 등의 활동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나라당은 이런 도의적인 부분도 의식해 더욱 투쟁방법에서 순리를 지키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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