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딛고 선 세원전기'파이팅 시무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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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해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다시 그런 고통은 없을 겁니다. 99년이 재기의 해가 되도록 힘을 합쳐봅시다." 2일 오전 시무식을 겸한 산행에 나선 세원전기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임건호 (任健鎬.41) 사장과 직원들은 이같이 결의를 다졌다.

"이유야 어쨌든 부도의 책임은 사장한테 있는 것 아닙니까. 저 때문에 직장을 잃은 직원들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서라도 죽을 힘을 다해볼랍니다." 관악산 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20여명 직원들을 향한 任사장의 말에는 비장감마저 감돌았다.

기아자동차 납품업체인 세원이 부도를 낸 것은 97년 10월. 기아에서 받은 14억원어치의 어음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이를 막느라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부도를 내고 말았다. 때마침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회사는 공중분해 위기에 처했다.

"문을 닫아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럴 수가 없더군요. " 任사장의 말.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재기에 나섰지만 매출의 90%를 차지하던 기아 물량 (공장자동화설비) 이 날아가 버린 마당에 회생의 길은 아득하기만 했다.

그런데 재기의 발판은 "예상치 못했던" 데서 찾아왔다. 매출액의 10%에 불과하던 전자식 '그린스타터' 가 '불씨'. 세원이 독자 개발한 그린스타터는 필라멘트를 가열하는 방식의 기존 제품과는 달리 형광등이 곧바로 켜지고 형광등 수명을 2~6배 향상시키는 성능의 제품.

품질보증 Q마크와 유럽 안전규격 (CE) , 독일 VDE마크까지 획득했을 정도로 품질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문제는 두배나 비싼 가격. 그런데 절약 풍조가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이 그린스타터를 찾기 시작했고 세원도 재빨리 시장 상황에 대응해 나갔다. 2개.6개들이 팩 제품을 선보인데 이어 여의도 중소기업전시장 등 3곳에 직영매장을 개설하는 등 마케팅을 강화했다.

평소에 신용을 쌓은 덕에 협력업체들이 외상으로 재료를 대주기도 했다.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안정기 생산업체들이 전자식 스타터를 내장한 안정기를 잇따라 내놓았고 세원의 매출은 급증했다.

종합상사를 통해 해외 마케팅을 편 끝에 독일.일본 등으로부터 1백50만달러의 수출주문까지 확보했다. 任사장은 "올 매출은 지난해 (30억원) 보다 훨씬 늘어난 80억원에 이를 전망" 이라고 말했다. 이대로라면 5억원 빚을 갚고도 흑자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새로 합류한 경영진의 도움도 컸다. 중소기업은행 지점장 출신 김정채 고문과 광명시청 국장을 지낸 성민남 이사는 '가능성' 만을 보고 각각 '무보수' 로 국내외 영업을 맡아 뛰고 있다.

세원은 일단 재기의 발판은 마련됐다고 보고 올해는 공격적인 경영에 나설 계획이다. 형광등 제어기를 자체 개발, 형광등 네온사인 사업에 뛰어드는가 하면 4월에는 경기도여주에 건평 4백50평 규모의 새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任사장은 "시간외 수당도 못받으면서 자진해서 밤 늦게까지 일해준 직원들이 고맙다" 며 "새 공장이 가동되면 옛 식구들까지 불러들일 계획" 이라고 밝혔다.

4년간 근무한 안숙자 (41.여) 주임은 "새해에는 부도가 끝이 아니며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며 활짝 웃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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