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힘]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본 시민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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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아직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시민운동을 자신과 관계없는 일로 생각한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면 대통령이나 정치가들을 욕하고, 경찰이나 관공서에서 불리한 처분을 받으면 '내 주변에 힘있는 사람 없나' 찾아보고, 자식 교육이 걱정되면 촌지 갖다줄 일부터 생각하며, 애써 모은 돈으로 사놓은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거나 믿었던 회사에서 쫓겨나면 신세 한탄하거나 점을 보러 간다.

이래서 한국의 시민운동 단체에는 '시민' 들보다는 그 일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이 더 많이 들락거린다.

언론에서는 시민운동의 힘이 커졌다 하지만 그것은 반만이 진실이다.

시민운동이 이제 보통의 시민들에게도 익숙하게 됐으며 과거의 관행대로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고 변칙적으로 상속을 시도하던 재벌기업이 이제 시민단체의 고발과 소송을 겁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시민운동은 힘이 커졌다.

그러나 이들 기업 사장들의 한달 판공비에도 못미치는 돈으로 한달 한달을 허덕거리며 사무실을 꾸려나가고, 운동의 주역인 30대 초.중반의 간사들은 아직 이들 기업 사원들의 초임에도 훨씬 못미치는 활동비를 받으면서 '독립투쟁' 하듯 일하고 있다.

이런 척박한 풍토에서 그래도 수많은 시민단체가 건재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울지 모른다.

오늘 한국의 시민운동이 그래도 우리에게 하나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기보다 원칙과 대의, 공동체를 더 중시하는 사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동을 '사회를 위한 보험' 으로 생각하면서 그러한 일에 자신의 시간과 돈을 나누어 주려는 시민들이 너무 희소하기 때문에 시민운동의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고, 짧은 연륜 탓이겠지만 활동가들의 전문성은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여전히 시민운동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비관적 시각 또한 시민운동이 넘어야 할 벽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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