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원의 알기 쉬운 의학 이야기] 무릎관절 수술한 노인, 폐색전증 주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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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폐렴으로 입원하셨을 때만 해도 고령이시긴 하지만 큰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폐색전증으로 인해 고비를 여러 번 넘기시더니 결국 서거하셨다.

알다시피 혈전이란 혈액이 응집된, 소위 ‘피떡’을 말한다. 동맥보다는 혈류 속도가 느린 정맥, 특히 다리(하지) 정맥에 더 많이 생긴다. 팔보다는 다리 쪽 정맥이 심장에서 멀다 보니 피가 정체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맥이 막히면 혈액이 심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고여서 다리가 붓고 통증이 생긴다. 비행기로 여행할 때 좁은 곳에서 장시간 움직이지 않아 생기는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도 하지정맥에 혈전이 생긴 것이다.

이 혈전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혈액 속을 떠돌아다니는 것을 색전이라 한다. 이 색전이 우측 심장을 거쳐 폐로 가는 폐동맥으로 들어가게 되면 폐동맥이 매우 좁아지는 폐조직 근처에서 걸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폐색전증이다. 폐색전증이 발생하면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오거나 숨이 찰 수 있다. 또 우측 심장의 피가 동맥을 통해 나가지 못해 심장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폐색전증 환자의 10~25%는 급속히 악화돼, 증세를 보인 지 2시간 내에 돌연사를 일으키기도 한다.

폐색전증은 특히 장기간 누워 있을 때 잘 발생한다. 폐렴 등에 감염됐을 때도 동반 위험이 증가한다. 또한 운동량이 적고 심폐 기능이 떨어진 70세 이상의 노인에게서 훨씬 잘 생긴다. 이러한 폐색전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 선행 원인인 정맥 혈전증부터 막아야 한다.

하지정맥 혈전증이 가장 많이 생기는 경우는 엉덩관절이나 무릎관절을 수술한 후다. 혈관에 손상을 줄 뿐 아니라 장기간 누워 있기 때문이다. 엉덩관절이나 무릎관절의 수술을 받으면서 적절한 예방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서양에서는 40~70%까지 하지정맥 혈전증이 생기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같은 상황에서 한국인의 발병 확률은 20~30%로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점차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수술 후 48시간~7일이 가장 위험한데, 드물게는 2~4주 후에 발생할 수도 있다. 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가능한 한 빨리 걷고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누워 지내는 경우에는 압박스타킹을 신어서 다리에 피가 고이지 않게 하거나, 양발을 자동으로 번갈아 가며 짜주는 간헐적 공기 압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50m가량 걸을 수 있는 정도가 되면 혈전증 발생 확률은 매우 작아진다.

폐색전증이 생길 가능성이 아주 높은 환자에게는 예방 목적으로 항응고제를 투여하기도 한다. 최근 서양에서는 무릎관절 또는 엉덩관절 치환술을 시행하는 모든 환자에 대해 하지정맥 혈전증과 폐색전증을 예방할 목적으로 항응고제를 투여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수술 후의 정맥 혈전증 발생률이 서양보다 낮기 때문에 서양의 지침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또한 다리 관절 수술 후에 항응고제를 투여할 경우 자칫하면 수술 상처 부위에 출혈이 많아지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과연 부작용보다 효과가 더 큰지에 대해 제대로 검증한 국내 연구가 없는 상황에서 항응고제를 일률적으로 처방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누워 지내는 분들의 다리를 번갈아 가며 주물러 주는 전통은 정맥 혈전증의 예방에도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마사지는 몸져 눕기 시작한 초기부터 일찍 시작해야 한다. 오랫동안 다리 마사지를 하지 않다가 갑자기 하면 이미 다리 정맥에 생겨 있는 혈전이 떨어져 폐로 올라가도록 부채질할 수도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경희대 의대 교수 가정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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