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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발되는 공무원 훈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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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장을 받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다. 사회에 공로가 뚜렷한 사람을 국가가 표창하기 위해 주는 것이 훈장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소중하고 귀하다.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은 고사하고 장관 표창 하나 받기도 어려운 마당에 훈장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훈장을 받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유족은 빈소에 영정과 나란히 훈장을 모신다.

하지만 선심 쓰듯 훈장을 주기도 한다. 정부는 17일 국무회의를 열고 2852명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전시(戰時)도 아닌 상황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훈장을 받는 것이다. 그중엔 퇴직하는 공무원과 교직원 2836명 포함돼 있다.

지난해 정부는 1만5469명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그중 1만2341명이 근정훈장을 받았다. 보국훈장 2229명, 산업훈장 314명, 건국훈장 192명, 국민훈장 187명, 체육훈장 78명, 문화훈장 36명, 과학기술훈장 34명 등이 뒤를 이었다. 공무원이나 교원에게 주는 근정훈장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상훈법 제2조는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자’에게 훈장을 준다고 명시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어떤 공적을 쌓았기에 훈장을 받는 것인가. 물론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훈장을 받기 위해 적어 내는 공적조서에 국(局)·과(課) 또는 기관의 업무 성과를 모두 자신의 것인 양 적어 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오랜 기간 봉사한 공무원들이기 때문에 훈장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더구나 징계를 한 번도 받지 않은, 모범적인 생활을 해야만 훈장 받을 후보가 된다고 한다. 박봉에도 불구하고 평생 공직에 근무하면서 희생했으니 국가가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설명이다. 업적을 단기간의 것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고, 누적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공적의 질(質)이 아니라 근무 기간의 길이로 업적을 따지는 것이다. 재직 기간 33년 이상은 훈장, 30년 이상은 포장, 28년 이상은 대통령 표창, 25년 이상은 총리 표창으로 분명하게 선을 그어놓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특별한 공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흠집 없이 일정한 기간을 채우기만 하면 퇴직 때 훈장을 가슴에 다는 것이 현실이다.

당연히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민간 분야 근무자보다 공무원이 국가와 사회에 훨씬 많이 기여하는가. 상은 많이 줄수록 좋은 것인가.

김상우 사회부문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