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 아침]이재무 '큰비 다녀간 산길'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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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큰 비 다녀간 산길 걸을 때 나는

작은 산이 된다 산꽃이 된다

돌멩이가 거칠고 많아도 맨발이 아프지 않고

넘어져 무릎 다쳐도 생피가 겁나지 않는다

공기는 탁구공처럼, 혹은 사랑에 막 눈

뜬 여인의

궁둥이처럼 둥긁, 탄력이 있고

내 몸은 바람 많이 든 공처럼 자꾸 튀어오른다

- 이재무 (40) '큰 비 다녀간 산길' 중

말이 숨차다.

탁탁 끊어진다.

거기서 배타적인 힘이 생긴다.

지난해 여름 폭우가 있었다.

그런 폭우 뒤의 참상과는 또 다른 산길에서 시인은 세상의 시름을 떨쳐버리고 그 최신의 기운에 휩싸여 그 자신을 사물화 (事物化) 한다.

그래서 공기도 나도 팽팽해져 튀어오르는 풍경이었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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