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후지쓰배 세계선수권결승] 이창호, 지옥의 종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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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 강동윤 9단 ● 이창호 9단

제11보(125~142)=100수 언저리에 승부를 알면 일류라 할 수 있다. 예전에 이창호 9단은 중반의 끝자락에 반 집 승부까지 정확히 내다보는 괴력을 보여줬다. 이런 능력을 ‘뛰어난 계산력’이라 말했지만-그래서 나는 신산(神算)이란 별호를 선사하기도 했지만-사실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계산과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라 보는 게 옳다.

‘계산’은 수읽기가 정확해야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 쌍방 최선의 수순을 거쳤다는 전제하에 반 집이든 한 집 반이든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만약 상대가 무리를 해 온다면 그를 응징하는 능력 또한 갖추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창호의 ‘계산’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능력이 100% 가동되지 않고 있다. 이 판만 해도 2집 반 언저리의 차이가 시종 이어지고 있는데 전성기의 이창호라면 이런 지옥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코스를 변경했을 것이다. 이창호가 예전에도 후반 추격이 주무기였다고 하지만 그건 두텁게 판을 짜 놓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강동윤 9단의 백△가 중앙 연결까지 내다본 양수겸장의 호착이어서 판은 의연히 백이 앞서간다. 이 9단은 전력을 기울여 중앙의 맛을 노리고 있지만 아슬아슬 안 된다. 140도 기민한 수. ‘참고도’를 예방하고 있다. 만의 하나 중앙이 끊어진 뒤엔 A는 선수가 안 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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