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右)가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이희호 여사의 손을 잡고 위로하 고 있다. 사진 왼쪽은 차남 홍업씨. [사진공동취재단]
주치의를 지낸 허갑범 박사는 “긴장의 연속이던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 뒤 긴장이 풀리면서 병을 얻으신 것 같다”고 추정한다.
김 전 대통령은 2005년 8월에도 폐렴 때문에 입원한 적이 있다. 그해 9월에는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 때문에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때까지는 그리 오래 입원하지 않고 병마를 이겨냈다.
그런 탓에 지난달 13일 김 전 대통령이 입원했을 때만 해도 감기로 인한 폐렴이 서거의 원인이 되리라고 생각한 의료진은 없었다. 김 전 대통령의 폐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석일 원장은 “뙤약볕에 검은 옷을 입고 예를 표한다면서 계속 일어나셨다.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육체적으로 힘든 하루를 보내 감기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고령에다 장기간의 혈액투석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있던 차에 폐렴이 찾아왔다. 그러다 보니 중증 폐렴으로 번졌다. 중증이면 사망률이 25∼50%(일반 폐렴은 1~5%)에 이른다. 다행히 19일 정상적인 호흡이 가능해지면서 인공호흡기를 뗐고 22일 일반 병실로 옮겼다. 정치 역경을 이겨냈듯 강인한 의지가 폐렴을 극복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폐색전증이 회복을 가로막았다. 산소를 교환하는 폐의 모세혈관을 작은 혈전(피떡)이 막아 호흡장애를 일으킨 것이다. 중환자실로 옮겨져 다시 인공호흡기를 부착했고 29일엔 호흡을 돕기 위한 기관지 절개술을 받아야만 했다. 이달 1일 새벽에는 2차 위기가 찾아왔지만 곧바로 정상을 되찾았다.
입원 후 최대 고비는 9일 새벽이었다. 호흡·맥박·혈압·산소포화도 등의 수치가 급격하게 나빠져 11시간 이 상태가 계속됐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폐와 심장·콩팥 등 여러 장기가 나빠졌다. 한 장기만 정지해도 언제든지 사망할 수 있는 상황이 계속됐다. 김 전 대통령은 37일 동안 세 차례의 위기를 꿋꿋하게 이겨냈지만 18일 낮 12시를 넘어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고종관·박태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