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힘있는 인권위 만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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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 정부의 대통령선거 공약 중 하나인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문제가 관계기관.단체 등의 견해차가 커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인권위 설치를 주요 내용으로 한 인권법을 만들어 세계인권선언 50주년 기념일인 10일 공포한다는 정부의 당초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다툼의 핵심은 인권위를 국가기구 (재야단체.국민회의) 로 하느냐 아니면 특수법인 형태의 민간기구 (법무부) 로 하느냐 하는 위상에 관한 부분으로 양측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다.

법무부는 인권위를 국가기구로 설치할 경우 '감시.보충' 기구가 아니라 별도의 수사기관 내지는 권력기관화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 일부 기관과 기능이나 업무가 중복되거나 사정기관끼리 공권력 행사를 둘러싼 마찰 등 부작용도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밖에 기구와 인원을 많이 늘려야 하므로 '작은 정부' 정책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한편 재야단체와 국민회의 측은 특수법인 형태의 인권위는 유명무실한 기구가 될 수밖에 없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고 맞서고 있다.

법인형태의 민간기구로 법무부의 예산지원 등을 받게 될 경우 통제가 가능해져 정부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별도의 국가기구로 만들어 예산.인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수사기능까지 갖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측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므로 이 시점에 왜 인권위를 설치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군사독재 정권을 겪으면서 국가기관의 인권침해가 제도화되다시피 한 불행한 과거를 갖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인권에 관한 한 불과 얼마 전까지도 후진국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인권 대통령' 을 표방하면서 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강조하고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부터 방지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들려는 게 인권법이고 인권위가 아니겠는가.

국가기관, 특히 안기부.감사원.검찰.경찰 등 소위 권력을 쥔 수사기관의 인권침해를 바로잡는 게 바로 인권위의 기능이다.

이들 기관을 상대로 조사하고 시정을 강제하려면 독립성과 자율성 확보는 필수적이다.

정부의 통제나 도움을 받는 민간단체 정도의 위상으로는 도저히 제구실을 해낼 수 없다는 게 분명한 것이다.

상징적인 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국민 인권보호를 위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나간 정권이 저지른 인권침해 사례까지 조사하고 바로잡는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또 다른 권력기관의 출현을 우려한다면 우선 한시적으로 국가기관으로 운영해보고 개선점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

허수아비로 시작하는 인권위에 인권보호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고 이는 새 정부나 金대통령의 뜻도 아니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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