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되는 여야 예산대립]84조 발목잡는 20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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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회창 총재 신변보장 각서 보도파동' 이 국회.정치일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

뒤뚱거리면서도 될 듯 될 듯하던 예산안 처리가 장기화할 조짐마저 보인다.

야당은 제2건국위 예산 20억원 전액삭감을 명분으로 계수조정소위에서 끝까지 버티고 있으며, 이에 따라 예결위 전체회의와 국회 본회의가 소집 불능상태다.

박준규 (朴浚圭) 국회의장은 예산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시켜 다수결 처리

(단독처리) 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으나 소위에서조차 합의되지 않은 예산안을 상정시키는 것은 위법이라는 법률적 검토가 끝난 상황이라 여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여당은 4일 아무런 공식회의도 갖지 않고 비난성명을 자제하는 등 격앙된 야당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김대중 대통령의 '간판사업' 인 제2건국위 운영예산을 계속 물고 늘어질 경우 '국가원수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 조차 외면하는 처사로 규정, 대대적인 공세를 펼 준비를 하고 있다.

청와대측도 야당이 '20억원 문제' 를 갑자기 걸고 나오자 신경을 곤두세우며 李총재가 金대통령을 상대로 정면대결하겠다는 의도인지를 살피느라 분주하다.

대결국면에 진입한 여야가 주말접촉을 통해 최소한의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아직도 유효한 것으로 알려진 사정 (司正) - 청문회 - 이회창 (李會昌) 총재 검찰조사 문제 등에 대한 막후 일괄절충마저 깨질 수 있다.

李총재에 대한 전격 소환조사의 가능성을 포함, 정국이 걷잡을 수 없는 표류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한화갑 (韓和甲.국민회의) - 박희태 (朴熺太.한나라당) 총무라인이 여전히 가동되고 있는데다 양측 모두 예산안과 다른 정치사안을 연계시키지 않는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어 돌파구가 찾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한편 이날도 각서파동의 진위에 대한 공방이 벌어졌다.

구천서 (具天書) 자민련 총무가 3일 일본 대사관 행사에서 박희태 총무를 만난 뒤 기자들에게 "朴총무가 검찰의 이회창 총재 조사방침에 대한 여권의 명확한 입장을 요구해 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고 말하면서 일파만파 확대됐다.

이어 국민회의 예결위 계수조정소위 위원인 이상수 (李相洙) 의원도 "한나라당은 李총재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원하고 있고, 이 부분만 해결되면 계수조정은 아무런 문제도 안된다" 며 '李총재 신변문제' 와 예산안 처리가 연계됐음을 주장했다.

이런 정보흐름이 "각서까지 요구했다" 고 와전.확대된 것. 물론 사건이 불거지자 3당 총무는 "각서의 각자도 나오지 않았다" 며 전면 부인했다.

여권에선 이 문제 때문에 상처받은 李총재의 자존심이 복원되려면 며칠은 더 있어야 될 것 같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전영기.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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