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한에게는 왜 말을 않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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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 간첩선을 놓친 일에 대해 정부 내부의 문책이 진행되고 있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장관을 질책한 뒤 국방부는 엄중한 문책을 단행했다.

문책과 전술.경비보완은 외양간을 고치는 중요한 일이다.

국민의 냉철한 안보의식은 따뜻한 남북한 교류.협력 정서와 더불어 대북 (對北) 정책의 수레바퀴인데 이러한 내부질책은 이를 고취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떠오른다.

정부는 정작 간첩선을 보내 정전협정을 위반한 북한에 대해선 왜 이렇다할 규탄과 요구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정부의 입장표명이 있기는 했다.

국방부는 사건을 중대하고 무모한 도발행위로 규정하면서 중지를 촉구했다.

"전국민과 더불어 분노와 경악" 이란 표현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국방부나 국가안전보장회의 또는 청와대 어느 곳이든 북한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거나 문제를 따지기 위한 북한 - 유엔사 장성급회담을 촉구한 일은 없다.

전체적으로 이번에 정부의 대북대응은 뭔가 중심적 에너지를 잃은 것이었다.

관례와도 맞지 않는다.

이번 침투는 상륙이 확인된 간첩이 없고 군이나 민간인의 피해도 없었던 '미수 (未遂)' 이므로 6월의 잠수정 침투.자폭, 7월의 무장간첩침투와는 격이 다르다는 시각이 혹 있을지 모르겠다.

"대남교류를 방해하려는 군부 강경파의 소행이지 북한정권의 의지는 아닐지도 모른다" 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들은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금강산관광은 북한정권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그런 사업이 막 시작되는 시점에서 간첩선이 나타났다.

이는 "북한정권의 진정한 의지가 무엇인가.

관광선이 멈춰도 좋단 말인가" 라는 국민적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확고한 안보태세는 정부 '햇볕정책' 의 가장 중요한 기둥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공식적으로 열어 북한의 의도를 분석하고 국민에게 알릴 것과 북한에 요구할 것을 명확하게 발표했어야 한다.

그러지를 않으니 햇볕정책 때문에 안보가 소홀히 취급된다는 의구심을 자아내지 않는가.

정부는 6월 잠수정침투때 북한에 사과.재발방지를 요구했다가 아직도 이를 관철하지 못한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이를 요구하면 부담만 늘어나는 것이란 염려가 있었는지 혹 모르겠다.

간첩 상륙이 확인되지 않은 사건을 확대하면 교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간첩선 출몰이 분명했다면 정부는 군을 질책한 것 못지 않게 북한에도 따끔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은 변할 수 없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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