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의 교차회담 평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미국]

미국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역시 중국과 러시아의 접근이다.

옐친 대통령의 입지가 불투명하기는 하지만 양국은 탈냉전시대 세계전략의 틀을 짜는 데 무시 못할 상대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국방부의 동아.태전략보고서 (EASR)가 지적했듯 중국은 21세기에 미국이 상대할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지난해 여름부터 일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 끌어안기를 본격화했다.

대중 (對中) 관계 개선에 정책의 비중이 실린 것이다.

미국정부내 전문가들은 중.러간 밀착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의 경제난이 단기간내 회복될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병든 코끼리' 러시아지만 엄청난 핵무기를 보유하고 현재로는 미국 국익을 위협하는 거의 유일한 세력이라는 점에서 각종 지원에 미국이 앞장서고 있다.

워싱턴 = 길정우 특파원

[일본]

일본은 일련의 정상회담이 국제사회의 안정에 기여했다고 반기면서도 미.중 관계의 급속한 진전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노구치 다카시 (猪口孝) 도쿄 (東京) 대 교수 (국제정치학) 는 "4강의 연쇄 파트너십 구축은 새 다국간협의체 태동의 신호탄 성격을 띠고 있다" 며 "이는 안보문제뿐 아니라 환경.마약.기아.범죄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서도 고무적인 현상" 이라고 말했다.

시보 미쓰카즈 (芝生瑞和) 국제문제 평론가는 "교차회담 결과는 특히 동북아의 안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 이라고 평가했다.

긍정론의 근저에는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분위기 조성 작업이 한걸음 진전됐다는 인식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보동맹의 핵심인 미국이 중국에 접근하는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도쿄 = 오영환 특파원

[중국]

중국 입장에선 알찬 수확을 거둔 한해였다.

가장 큰 소득은 세계문제를 다룰 때 중국 없이는 안된다는 점을 만방에 알렸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아시아 금융위기.서남아시아 핵개발경쟁 등 주요 현안들을 중국의 도움 없인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제 아시아에서 미국의 파트너는 일본 아닌 중국이 되었다며 만족하는 분위기다.

미국과 '전략적 동반자관계' 를 구축,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중.미 협력의 시대를 여는 동시에 슬그머니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국가로 부상하는 부수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한편으로는 소외감을 느껴온 러시아에도 접근해 실속을 챙겼다.

중.러 정상은 여섯번째 만남을 아예 옐친 대통령이 입원한 병실에서 가졌을 정도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러시아]

러시아 입장에서 러.일, 러.중 회담은 잃은 것이 없는 '플러스 게임' 이었다.

외교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동북아의 변화과정에서 소외될 수 없는 상수 (常數) 적 강국이며▶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관계개선.협력강화 없이는 지역정세의 안정을 꾀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러.일 회담에서 영토문제에서는 사실상 아무 양보도 하지 않은 채 ▶일본의 대 (對) 러 투자약속을 얻어 내고▶2000년까지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로 합의하면서 이른바 '창조적 파트너십' 선언을 이끌어 내는 성과를 거뒀다.

반면 러.중 회담은 '유일패권국' 미국에 대한 대응을 염두에 둔 회담이었던 만큼 '전략적 동반자관계' 의 강화에 비중을 뒀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