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 거부한 중국] 학술적 해결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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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우 외교부 아태국장은 6일 베이징(北京)에서 8시간30분 동안 왕이 외교부 부부장 등 중국 고위 당국자 4명과 잇따라 만나 고구려사 역사 왜곡 시정 교섭을 벌였으나 중국 측의 거부 의사만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중국 측은 "한국정부와 한국민의 고구려 역사에 대한 높은 관심을 이해한다"는 '립 서비스'를 한 후 "정치문제화하기보다는 학술적으로 해결하자", "미래지향적으로 대국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자"며 본질을 회피했다. 외교 교섭을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이 문제가 장기간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 측의 역사 왜곡이 더욱 확산될 것이란 우려도 낳았다.

중국 측의 고구려사 왜곡 골자를 보면 우선 고구려가 한반도에 근거를 둔 한민족의 역사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줄기차게 강조한다. 그 예로 현재 중국 영토 내에 있던 고구려가 중원에 세워진 정권에 조공(朝貢)을 하고 이들로부터 책봉(冊封)을 받았으며 연호(年號) 또한 대부분 중원의 것을 사용했다는 점 등이다.

또 고구려 무덤에서 발견되는 벽화들이 이보다 시기가 앞선 중국 내 다른 무덤 벽화와 사찰 벽화 등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 입각해 중원 문명과 고구려 문명이 한 계통에서 성숙해 발전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초기에 현재의 중국 땅에 자리 잡아 동북 지역을 통치했던 고구려와, 장수왕 때 지금의 한반도 서북부인 평양으로 이주해 자리 잡은 고구려는 직접적인 상관성이 없으며 원래 중원 왕조에 속했던 초기 고구려는 그냥 중국 땅에 남아 소수 민족의 일부로 지금까지 내려왔다는 게 중국 측 주장의 골자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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