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의 위기 … 중동 모래바람 ‘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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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동아시아 농구선수권에서 처음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은 이후 9연승을 내달렸던 허재 감독이 12일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이란전에서 66-82로 참패했다.

허 감독은 국가대표 수장으로 아직 9승1패의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이제부터 폭풍 속을 헤쳐나가야 한다. 한국은 허재 감독이 선수 시절이던 1998년을 마지막으로 11년째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 3위 이내에 들어야 세계대회에 나갈 수 있는데 현재로는 가시밭길이다. 허 감독은 운이 좋은 지도자로 꼽혔다. 프로농구 KCC 감독으로 하승진과 혼혈 선수 토니 애킨스(한국명 전태풍)가 걸린 큰 드래프트 추첨에서 모두 1순위 결정권을 잡아 두 선수를 데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 감독은 대표팀에서는 두 선수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힘과 개인기가 좋아 국제무대에서 위력을 펼칠 것으로 기대됐던 전태풍은 귀화 시험에서 한 차례 낙방하는 바람에 이번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하승진은 발목을 다쳐 훈련을 못한 탓에 이란의 하메디 하다디에게 완패하는 등 역부족이다. 허 감독은 “우리 소속팀 선수라 데려오지 않으면 ‘자기 선수만 챙긴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함께 오긴 했지만 애초부터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제 그에게 행운은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14일 8강전에서 만날 레바논은 우승 후보다. 중국에 68-71, 3점 차로 패하긴 했지만 미국·캐나다 태생 선수 5명이 뛰고 있어 전력이 탄탄하다. 특히 쌍돛대인 매튜 프리제(2m8㎝)와 잭슨 브로만(2m8㎝)은 경기당 34.7득점과 13.2리바운드, 2.9어시스트를 합작했다. 중국전에선 둘이 합쳐 47득점을 기록했는데 하승진이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을 막기가 버거워 보인다. 허 감독은 “레바논은 중동팀인지 미국팀인지 알 수가 없다” 고 말했다. 심판들도 한국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다. 이제 허재호에 남은 것은 실력뿐이다.

김동광 KBL 이사는 “상황이 좋지 않다. 허 감독이 선수 시절 그랬던 것처럼 지도자로서도 뭔가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톈진=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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