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Street Sketch] 냄새와 향기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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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버스 안에서 꼬박꼬박 졸다가 단숨에 잠이 깬 적이 있다. 내 단잠을 방해한 정체는 ‘냄새’였다. ‘훅~’ 하고 콧구멍 가득 들어온 공기가 어찌나 역겹던지 “윽!” 하고 눈이 절로 떠졌다. 냄새의 진원지는 옆에 선 아주머니였다. 동창회 모임에라도 가는지 아주머니의 옷 매무새는 곱고 우아했다. 발그레하게 홍조 띤 얼굴, 적당한 크기로 손가락을 차지한 유색 보석 반지, 에르메스의 켈리 백을 닮은 가방, 5cm 높이의 앞코가 부드러운 구두 등 외양상으로는 흠잡을 것이 없었다.

그럼 뭐가? 깔끔하게 세탁한 아주머니의 옷가지 중 하나에 대량으로 묻어 있는 섬유유연제가 문제였다. 분명 장미향(?)이었다. ‘아주머니, 어디까지 가세요?’ 묻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자리를 옮길까도 고려했지만 빈 자리가 없었고. 결국 내가 먼저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사전에서 ‘냄새’와 ‘향기’를 찾아봤다. 짐작했겠지만 냄새는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기운을 의미한다. 역시나 향기는 꽃이나 향수, 향초 등에서 나는 좋은 냄새를 말한다. 수학적으로 정리하면 향기는 냄새의 부분집합이다. 여러 가지 냄새 중에 좋은 것들이 특히 향기로 불리는 것이다. 그런데 예쁜 색깔들이 모이고 모이면 결국 검정이 되듯 좋은 향기에도 ‘과유불급’의 원칙이 존재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침마다 다양한 종류의 향기를 입는다. 머리를 감을 때 샴푸에서, 샤워를 할 때 샤워 젤에서, 기초 화장품·색조 화장품도 저마다 향을 갖고 있다. 보디 크림이 담고 있는 향기는 화장품보다 조금 진하다. 옷을 입고 나면 섬유유연제 향이 덧붙는다. 스타일링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향수 차례가 오면 향의 농도는 더욱 진해진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몸에 얼굴에 묻은 향기들을 모두 덮어버릴 수준은 아니다. 자, 이제 생각해 보자. 오늘 하루, 섞이고 섞인 향기들 속에서 당신의 진짜 향기는 무엇입니까?

2000년도에 “그녀의 머리카락에서는 국화꽃 향기가 났다”고 했던 김하인의 『국화꽃 향기』가 발표되고 벌써 10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멜로드라마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무슨 샴푸 써요?” 그는 진짜 샴푸 종류가 궁금했을까. 분명 그녀의 좋은 향기는 샴푸 때문만은 아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에 익숙한 시대다. 하지만 우리의 감각은 오감이라는 다섯 개의 채널을 통해 감지된다. ‘나’라는 이미지와 스타일은 향기로도 구분될 수 있다. ‘좋은 것’만을 골라 섞어 어정쩡해진 냄새보다는 한 가지라도 확실히 구별되는 나만의 향기를 가져보자. 마침, 여름이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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