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조계종의 불협화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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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싸움이나 그밖의 이유로 극도의 혼란에 빠진 장소나 상태를 일컬어 '수라장' 이라 한다.

고대 인도의 신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아수라 (阿修羅) 는 본래 착한 신 (神) 이었으나 호전적인 기질 때문에 툭하면 여러 신들과 싸움을 벌였다.

모든 신들이 패주했으나 강력하게 맞선 신이 불법 (佛法) 의 수호신 제석천 (帝釋天) 이었다.

그는 아수라와의 전쟁에 임하는 제신 (諸神) 들에게 무엇보다 '마음의 평정 (平靜)' 을 당부했다.

두렵거나 공포심을 느낄 때 마음을 가다듬고 깃발의 끝을 응시하면 싸움터가 '수라의 장 (場)' 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부처는제자들을 가르치는데 이 신화를 곧잘 인용했다.

깨달음을 얻는 일과 도를 닦는 일을 '자신과의 싸움' 이라 믿었고, 싸움이라면 설혹 자신과의 싸움이라 할지라도 두려움이나 공포심을 갖게 마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대들이 도를 얻고자 할 때, 공포가 생기고 모발이 송연해지거든 나 여래 (如來) 를 생각하라. 나를 생각할 수 없거든 내가 설파한 법을 뇌어 보라. 또 법을 뇔 수 없거든 승가 (僧伽) 의 길을 생각하라. 그렇게 하면 그대들의 마음 속이 '수라의 장' 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불교에서말하는 불.법.승 (佛.法.僧) 의 삼보 (三寶) 는 여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서 불과 법은 부처 자신과 그의 가르침을 뜻하며 승은 불과 법을 실천 수행하면서 그것을 세상에 전파하는 사람들, 곧 스님을 뜻한다.

그래서 불가에 귀의한 스님이나 신도들이 마음의 평정을 잃어 도무지 불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할 때 '마음의 수라장' 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한데 우리 불교의 현대사를 되짚어 보면 그 자체가 바로 수라장의 역사다.

스님 개개인의 '마음의 수라장' 이 곧바로 난장판과도 같은 현실의 수라장으로 이어지곤 하는 것이다.

총무원장 선거를 둘러싼 최근의 조계종 사태만 해도 그렇다.

'염불보다 잿밥' 이 아니냐는 비난에 떳떳하게 '아니다' 고 할 수 있는 당사자가 얼마나 될까. 총무원측이 동원한 경비업체의 직원들과 총무원 청사를 점거중인 스님들의 난투극을 바라보는 국민과 신도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총무원장이 사퇴를 선언했다지만 해결될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부처가 가르친 '승가의 길' 이 과연 무엇인가를 곰곰 되씹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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