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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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6장 두 행상

한씨네 떨거지들의 뒤를 따라 예천장으로 떠나자고 서두르는 윤종갑에게 제동을 걸고 나선 사람은 의외에도 박봉환이었다.

윤씨와 동행으로 주문진을 떠난 이후 봉환은 대체로 침묵을 지켜왔었고, 윤씨의 주장을 눈에 띄게 거슬린 적도 없었다.

괴이할 정도로 묵묵히 윤씨의 주장을 따랐다.

그런데 구린 입도 떼지 않고 있던 그가 한씨네 패거리를 뒤쫓아 채비를 하고 예천으로 떠나야 할 아침 시각에 딱 버티며 제동을 걸었다.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예천과 의성은 안동에선 비슷한 거리에 같은 날인 2일과 7일에 장이 섰다.

일행 넷 중에서 1톤 트럭 운전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은 봉환이뿐이라는 사실도 곤욕스러웠다.

죽은 듯이 있다가 느닷없이 버티는 속셈을 알 수 없었다.

울화통이 터진 윤씨가 목멘 소리로 통사정을 하였지만, 봉환은 운전석으로 올라갈 낌새가 아니었다.

화증을 돋우고 설치던 윤씨는 결국 봉환이를 이끌고 골목 안으로 들어가서 까닭이나 알자고 구슬렸다.

"우리가 이 꼴로 그느마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는 게 구상유치하고 미친 짓이란 생각 안들어요? 언제까지 그느마들 뒤만 따라댕길라꼬 그래요? 저것들이 망쪼드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은 나도 꿀뚝 같은 거라요. 그런데 내가 몇날 며칠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저느마들이 쫄딱 망한다케도 망할 건데기가 없는기라요. 건데기가 있어야 망할 것도 있는 법인데, 건데기도 없는 놈들이 망해 봤자 본전 아닙니껴.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형님이나 나나 애당초부터 시단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안듭니껴? 저느마들 원수를 갚자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이란 게 딱 한가지뿐인데, 그기 바로 우리가 어에 부시대든지 (어떤 수를 쓰든지) 저느마들 아가리가 딱 벌어질 만큼 돈을 버는 일이 아니겠소. 그런데 저느마들 뒤꼭지만 바라보며 따라 다니는 주제에 돈 벌 궁리는 언제 하겠소. 무슨 수를 내야지 이래 가지고는 죽도 밥도 안되는 거라요.

형님,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걸 보고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카는 거라요. 저느마들이 눈도 깜짝 않고 있는 까닭이 형님은 뭐라고 생각해요?" "이봐 봉환이. 이제 와서 엉뚱한 소리로 생사람 잡기야? 주문진 떠날 때 우리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이렇게 하자고 합의를 봐서 벌이는 짓이 아닌가. "

"머리 아니라, 코를 맞대고 한 약조라 카디라도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당장 고쳐야하지 않겠습니껴.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미친 짓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역사책에 기록으로 남을 웃음거리 아니겠어요? 저느마들이 깜짝 놀라도록 단시간에 돈을 벌어야 그게 바로 올곧은 보복이 되는 것인데, 이게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거 아닙니껴?"

"그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군. 하지만 우리가 주색잡기에 본전을 탕진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저 놈들 뒤쫓는 일에만 대가리 박고 있는 것은 아니잖어. 매상도 그만했으면 딴 놈들 보기에 부끄러울 정도는 아니었고, 나름대로는 이문도 많이 남기는 장사를 하고 있는 중이 아닌가.

그런데 갑자기 주리틀듯이 뒤틀고 나오는 까닭이 나변에 있나? 마음이 변했으면 사람이 눈치라도 채게 해야 놀라지 않지. "

"어쨌든 저느마들 뒤쫓아 다니는 챙피한 짓은 남들이 알까바 무서워요. 그만 두고 우리 살아날 궁리부터 합시다. 내가 무작정하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닙니다. 내한테도 생각이 있으니까, 오늘은 의성장으로 갑시다.

안동서 삼십분만 달리면 의성장 아닙니까. " 듣고보니 생판 어거지로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만했다.

그러나 느닷없이 박봉환의 주장에 따라 순발력을 발휘하여 움직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 윤종갑의 뒤통수를 쳤다.

그것은 바로 배완호와 조창범의 문제였다.

그 두 사람이 이런 와중에도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윤씨로선 봉환의 말에 구미가 당긴다 하더라도 덥석 끌어 안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두 사람도 일행이 아닌가.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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