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후지쓰배 세계선수권결승] 강동윤, 은근한 도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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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후지쓰배 세계선수권결승'
○·강동윤 9단 ●·이창호 9단

제3보(30~38)=공격의 손바람은 신나지만 살아버리면 닭 쫓던 개 신세가 된다. 너무 길게 늘어선 공격부대가 허점을 드러내고 드디어 역습의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이창호 9단은 그 흐름이 매우 싫어 공격을 극도로 자제한다. 잠시 폭풍우가 될 때도 있지만 결코 공격에 목을 걸지는 않는다. 강동윤 9단은 31로 하나 던져놓고 32의 요소를 막는다. 근거는 물론이고 실리로도 아주 커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곳이다(32를 조잔하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하수다). 이 장면에서 흑의 다음 한 수는 아주 빤해 보인다. 바둑 두는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따끈따끈한 모자. 바로 그곳이다. 그러나 이창호 9단은 하변을 못 본 척하고 33으로 두 칸만 벌린다. 착실하고 무심한 보폭이다. 아마추어라면, 아니 대다수의 프로조차 ‘참고도1’ 흑1의 공격을 노타임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창호는 백2로 어깨 짚고 나오는 수가 있는 한 공격은 어렵다고 본다. 여기서부터 강동윤의 선택이 재미있다. 상대의 공격의지가 희미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미묘한 심리전으로 나온다. 응급조치만 하고 손 뺀 36이 그렇고 연결이라기엔 너무 먼 38도 그렇다(사실 38 대신 ‘참고도2’처럼 달아나면 흑2로 쫓아가는 흐름이 좋다). 그걸 이창호도 감지했다. 상대가 자극하고 있다. 손 봐줘야만 할 때가 온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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