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평화를 부르는 인디언의 속삭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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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 04면

아파치, 코만치, 모히칸, 샤이엔…. 그렇다. 이건 서부 영화에서 존 웨인, 게리 쿠퍼 등의 손에 익명으로 쓰러져간 인디언 부족들의 이름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영화 속 인디언들은 야만스럽고 무자비했다. 이제 이들과 더불어 라코타족의 이름을 기억하자. 그리고 인디언들을 다시 보자.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는 절로 그런 마음이 들 거라고 본다.

김성희 기자의 BOOK KEY-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 조셉 마샬 3세 지음, 김훈 옮김, 문학의 숲

라코타족은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했던 영화 ‘늑대와 춤을’에 나왔던 그 인디언 부족이니 기억하는 이들도 더러 있겠지만 미주리강 서쪽의 대평원에 살았던 아메리카 원주민이다. 작가이자 연기자·교육자 등으로 다양한 삶을 산 지은이는 라코타족 출신으로 그의 인디언 이름은 ‘들소가 사랑해’란다. 그는 수백 년간 전해 내려온 부족의 이야기를 갈래 짓고, 정리하고 거기서 사랑과 진실, 지혜에 관한 교훈을 길어냈다.

그가 들려주는 라코타족의 가르침은 12가지. 겸허함, 인내에서 너그러움, 지혜까지 현대인들도 귀 기울일 만한 내용들이다. 부족 자체가 스러져가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이야기들인 만큼 남다른 생명력이 있을 수밖에.

지은이가 초등학교 때 같은 반 백인 아이들이 온갖 별명을 붙여 괴롭혔다고 한다. 모욕감에 가슴 아파하는 그에게 할아버지는 “말이 상처를 안겨줄 수도 있지만 네가 그렇게 되도록 허용할 때만 그렇다”고 일러준다. 그러면서 “그런 말들이 날아올 때 그냥 흘려버릴 수도 있는데…. 만일 네가 그 바람이 너를 스치고 지나가게 하는 법을 익히기만 한다면 너를 쓰러뜨릴 수도 있는 그 말들의 힘을 없애버릴 수 있다”고 귀띔한다. 바로 책의 제목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건 지은이의 개인적 경험이지만 ‘소문 퍼뜨리기 좋아하는 여자 이야기’처럼 교훈이 담긴 우화나 설화도 가득하다. 남의 이야기를 옮기기 좋아해 분란과 불화를 일으키는 바람에 부족에서 따돌림을 받게 된 여자가 마을에서 가장 지혜로운 할머니를 찾아가 상의했다.

그 할머니는 “그동안 소문을 퍼뜨렸던 사람들 집 문 앞에 솜털을 하나씩 놓고 오라”더니 시키는 대로 하고 온 여자에게 “네가 놓아둔 솜털을 다 되찾아 오라”고 지시한다. “바람에 다 날아갔을 텐데 어떻게 되찾아 오느냐”고 묻는 여자에게 지혜로운 할머니는 “남들을 해치는 말은 평생을 쫓아다닌다 해도 날아가 버린 솜털처럼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고 일깨우며 해법을 가르쳐 준다.

유럽인들의 핍박으로 예전의 성세를 잃어버렸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라코타족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용하다. 강제로 영어를 가르치고 교회에 보내는 등 이른바 문명의 세례를 겪으면서도 “속삭여라”란 한마디로 상징되는 내밀한 흐름으로 고유 문화를 지켜온 것은 그만한 생명력이 있기 때문 아닐까.

여기에 지은이의 문명비판도 곁들여져 여느 막연한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읽힌다. 1장 ‘겸허함’에 나오는 “요즘 지도자들을 선출하는 과정에서는 겸허한 태도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자기가 지도자감이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입후보자’라고 선언하고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대부분 사람은 그 후보자들을 잘 알기 못하기에 최소한 조금이라도 자기 자랑을 늘어놓아야 하고 많은 약속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구절이 그런 예다.

이야기의 힘을 충분히 보여주면서 가볍지 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경력 27년차 기자로 고려대 초빙교수를 거쳐 출판을 맡고 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한다. 『맛있는 책읽기』등 3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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