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신 관치경제 경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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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즈음 같으면 공무원 한번 할 만하다.

실업대책.금융구조조정 등 입만 벌렸다 하면 몇조원 규모의 씀씀이를 말할 수 있으니 남보기에도 배포 커 보여 좋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산천초목이 떠니 중요 인물처럼 보여 좋다.

요 며칠 관료들의 민간경제 다그치기가 부쩍 심해졌다.

은행.재벌의 구조조정을 연내에 마무리하겠다는 조바심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자율적으로 하랬더니 구조조정을 안한다" 며 민간경제 개입을 당연시하고, 혹간 말을 듣지 않는 은행이나 기업이 있으면 "문을 닫겠다, 대출을 끊겠다" 는 엄포가 귀에 설지 않다.

이제 관 (官) 의 입김은 금융.기업.노동 등 경제의 구석구석 어디서나 느낄

수 있게 됐다.

그토록 대통령이 "국민의 정부는 '민주적 시장경제' 가 원칙" 이라고 외쳐도 이렇듯 관치경제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웬일인가.

경제위기 속에 민간경제가 위축돼 그렇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민주적 시장경제' 를 펼쳐야 할 바로 그 공무원들이 과거 '관치경제' 시대의 유물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인 것 같다.

특히 경제개혁과 구조조정 관련부처를 이끌고 있는 인물들로부터 민간 위의 군림을 당연하게 여기던 과거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면 무리일까. 머슴은 주인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못된 주인 밑에서 큰 머슴은 주인이 바뀌어도 못된 짓 하기는 마찬가지인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과거 정권의 통치도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고위공무원들을 그대로 둔 것은 그들이 새로운 시대의 창출을 위해 새로운 정신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모든 자리를 새로운 정권창출에 기여한 사람들로 채우라는 얘기가 아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원론을 되풀이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다만 '민주적 시장경제' 로의 나아감에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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