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미군논의 수용]북한 미군철수론 사전봉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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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년 1월부터 가동될 4자회담 분과위원회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아닌 감축 문제는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정부의 입장변화는 분과위에서 주한미군 문제의 논의를 피할 수 없다는 현실적 상황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목표로 한 4자회담에서 한반도에 주둔하는 외국군 문제에 대해 영원히 협상을 안할 수 없다는 게 4자회담에 참석해온 정부 고위 당국자의 얘기다.

이번 회담에서 분과위 구성 문제가 타결되긴 했지만 주한미군 철수를 한반도 평화의 핵 (核) 으로 인식하는 북한의 입장이 바뀐 건 아니다.

평화체제 분과위와 나란히 열리게 될 긴장완화 분과위에서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의제로 들고나올 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주한미군 철수를 '논의 (discussion)' 할 수 있지만 의제에 올려놓고 '협상 (negotiation)' 을 벌일 수는 없다는 한.미 양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24일 제네바 회담이 끝난 뒤 가진 언론 브리핑에서도 미국측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이라고 못박았다.

분과위가 가동되더라도 시작부터 의제문제로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해소하는 열쇠를 북한군과 주한미군의 동시감축에서 찾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긴장완화 분과위에서 다룰 의제 가운데 하나로 '한반도 군비 (軍 備) 축소' 를 채택하고, 그 안에서 북한국.한국군.주한미군 등 '한반도에 존재하는 모든 군사력' 의 동시감축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겠다는 쪽으로 한.미 양측은 입장을 정리했다.

주한미군의 존재가 단순히 한반도의 전쟁억지에만 있는 것은 아니며, 미국의 동북아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모를 리 없는 북한으로서도 이 정도면 받을 만하다는 것이 한.미의 판단이다.

그러나 내년 1월부터 당장 이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남북한 군 당국간 직통전화 가설 등 초보적 수준의 신뢰구축 조치가 먼저 이뤄지면서 점차 논의가 확대될 전망이다.

합의문만 놓고 보면 분과위 구성은 북한의 양보로 비춰진다.

그러나 "우리는 양보한 게 없다" 는 게 김계관 (金桂寬) 북한측 수석대표의 얘기다.

미국과 북한은 이번 제네바 회담장에서 모두 네차례에 걸쳐 양자접촉을 가졌다.

분과위 구성은 30만t의 식량지원 등과 함께 뉴욕 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이 합의한 사항의 하나다.

양보가 아니라는 북한측 얘기는 자기들로서는 '미국' 과의 합의사항을 이행했을 뿐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4자회담을 북.미 대화의 장 (場) 으로 여기는 북한의 기본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제네바 =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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