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어느 건축업자의 울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건축사의 39%가 담당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적이 있다는 보도 이후 수도권에서 건축업을 한다는 독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기사를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 전화했습니다.

정말 그 정도밖에 안된다고 생각하세요?" 전화 목소리에선 한심해 하는 느낌이 생생히 감지됐다.

- 서울시의 자체 조사 결과니 아무래도 실제보다 비율이 낮겠지요.

"건축현장에서 금품이 오가는 것은 고정적 관행이에요. 거의 1백%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뇌물액수도 30만원 이하가 대부분이라고 했는데, 그건 밥값이지 뇌물로 치지도 않아요. 공동주택의 인허가는 천만원 단위예요. 나도 1천5백만원을 건넨 적이 있고, 3천만원 주는 것을 본 적도 있어요. "

- 돈은 누구에게 줍니까.

"칼자루는 담당공무원이 쥐고 있어요. 6~8급 정도죠. 그 사람들, '건축현장은 내 손아귀에 있다' 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녀요. 실무자가 기안을 안올리면 일이 안됩니다.

며칠만 질질 끌면 그건 돈달라는 '사인' 이죠. "

- 뇌물줄 때는 건축시공에도 약점이 있는 게 아닌가요.

"집 짓는 일이 칼로 베듯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꼬투리 잡기 시작하면 한이 없어요. 수십억원씩 들여 집 지어놨는데 준공검사가 안떨어진다고 생각해보세요. 하루 은행 이자만도 엄청난데 속이 바짝바짝 타죠. 말 안해도 끌려오게 돼 있어요. 앞으로 집 안짓겠다는 각오없인 항의할 엄두도 못내요. "

- 그래도 요즘엔 좀 달라지지 않았나요.

"10년 이상 일해왔지만 정말 조금도 달라진 게 없어요. 수법만 더 지능적으로 됐어요. 올 추석때도 현장에 거두러 다니는 공무원이 있더라고요. 서울도 그렇지만 지방은 진짜 '무풍지대' 예요. "

그는 다음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높은 분들이 야단치고 닦달한다고 해결될 문제라면 비리는 벌써 사라지고도 남았을 겁니다.

이제 제발 쇼는 그만 합시다.

제대로 부패방지 종합대책을 세워 끈질기게 밀고나가야 됩니다.

이번엔 정말 뿌리뽑았으면 좋겠어요. "

문경란 전국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