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부패고리 이젠 끊자]하.규제가 비리 낳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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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기도 A시에서 가스충전소를 운영하는 金모 (50) 씨는 차량이 자주 들락거리는 충전소의 이점을 살려 세차장을 겸업하기로 마음먹고 지난 여름 구청에 사업허가를 신청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임대한 땅에서는 오.폐수 관련 사업을 할 수 없다' 는 것이 이유였다.

金씨는 "충전소 바로 옆 셀프세차장과 주유소내 세차장도 임대한 땅인데 어떻게 된 것이냐" 고 따져봤지만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았다.

담당공무원의 태도를 통해 세차장 허가가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님을 눈치챈 金씨는 "처음부터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 이라며 "공직 부패의 메커니즘을 실감했다" 고 말했다.

공직 비리는 대부분 불합리한 규제에 뿌리를 박고 있다.

공무원 청렴도가 세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과도한 규제 때문이다.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경영개발연구원의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무원의 청렴도는 조사대상 46개국 가운데 꼴찌다.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 타파 정도 역시 46위, 관료주의 타파 정도 42위라는 보고내용은 공직 부패와 규제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준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총 1만1천여건의 규제중 절반 이상을 폐지하거나 완화한다는 계획이지만 올해 상반기 실적은 5백70건에 불과하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넣어주거나 즉석 도시락을 데워주는 것 등이 처벌대상이 되는지에 대해 지자체마다 해석이 다르다. "

24시간 편의점 직원 李모 (36) 씨의 말은 우리 규제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뜯어보면 규제를 위한 규제뿐인 구시대적 내용이 수두룩하다.

관 (官) 이 모든 것을 챙기고 책임을 진다는 생각이 문제다.

그러다 보니 관 중심의 규제가 될 수밖에 없다.

또 내용이 지나치게 세부적이고 과도해 공무원의 부패를 부추기고 국가경쟁력 향상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가져온다.

건설현장 안전심사를 공무원 대신 전문성과 책임의식이 있는 보험회사 직원들이 맡도록 하는 미국의 예는 시사하는 바 크다.

그들은 정부규제 대신 웬만한 공사현장은 보험을 들게 해 규제의 목적을 실현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체감할 수 있는 규제혁파가 시급하다고 국민들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종문.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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