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자회담 분과위 구성문제로 지루한 소모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제네바 4자회담이 이번으로 세번째지만 여전히 분과위원회 문제에 걸려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루하고 답답하기는 현장에 와 있는 취재기자들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분과위가 무엇이길래 그토록 문제가 되고 있는지 그 내막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본다.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이 4자회담의 기본 목적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제반 문제를 정전협정 당사국과 관련국인 남북한 및 미국.중국이 제네바에 모여 협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회담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서는 회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틀이 우선 마련돼야 한다는 데는 아무런 이의가 없다.

그 틀을 분과위로 한다는 데까지는 지난 2차회담에서 합의됐다.

그렇다면 어떤 분과위를 구성해 그 안에서 무엇을 논의할 것인가.

여기서부터는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크게 보면 '내용과 형식중 어느 게 먼저냐' 는 논리 싸움이다.

'선 (先) 분과위 구성, 후 (後) 의제 확정' 이 한.미의 입장이다.

중국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러나 북한은 정반대다.

김계관 (金桂寬) 북한측 수석대표는 "의제가 먼저 정해져야 그에 맞춰 분과위를 구성할 수 있을 게 아니냐" 고 반박한다.

'선 의제확정, 후 분과위 구성' 이 북한 입장인 셈이다.

서로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는 지루한 소모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분과위 문제가 타결되지 못하고 있는 근본 이유는 주한미군 철수와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반드시 의제에 포함시켜 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북한의 일관된 주장에 있다.

게다가 이번 3차 회담에서는 한반도 무기반입 금지와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지까지 추가했다.

의제 문제로 다투다 보면 도대체 결말이 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4자회담의 기본 취지를 포괄할 수 있는 평화체제와 긴장완화라는 두 개의 분과위를 일단 가동시킨 뒤 그 안에서 의제 문제를 다시 논의하자는 것이 21일 수석대표 기조발언에서 밝힌 한.미의 입장이다.

상반된 입장을 절충할 수 있는 접합점을 기술적으로 어떻게 찾느냐가 분과위 구성의 관건이다.

하지만 설사 분과위가 가동되더라도 북한의 기본 입장에 변화가 없는 한 본질적 문제는 그대로 남게 된다.

언제 보더라도 4자회담은 답답한 회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제네바 = 배명복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