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행 옴부즈맨 칼럼]TV보다 못한 신문신뢰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신문의 신뢰도가 TV보다 뒤처진다는 언론연구원의 '수용자 의식 (미디어의 영향과 신뢰도) 조사' 보고서는 매우 충격적이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신뢰도에선 신문이 항상 TV보다 앞서 왔다고 조사됐었고, 또한 그런 인식이 일반화됐었다.

그러나 신뢰도에서조차 신문이 TV에 뒤처졌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신문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선 크게 반성할 소지가 있음을 웅변으로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신문과 TV는 성격이 다른 매체이기 때문에 그것을 평면적인 기준으로 비교 평가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이미지 측면에서 보면 신문보다 TV가 앞선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신뢰도를 말한다면 당연히 TV가 신문에 앞서는 결과가 도출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설령 그런 점들이 고려된다고 할지라도 신문의 신뢰도가 왜 새삼스럽게 문제가 되고 있는지는 신문의 처지에서 자성 (自省) 하는 바 있어야 할 줄 믿는다.

아울러 내가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언론연구원의 조사보고서 내용을 일부 신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이 거의 보도하지 않았든가, 했더라도 눈에 띌까 말까 할 정도로 축소 보도했다는 사실이다.

어떤 기사를 다루느냐의 여부와 함께 기사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그날의 지면사정에 따른 편집자의 가치판단 영역에 속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신문이란 매체에 다소라도 불리한 기사라고 해서 그것이 외면되거나 축소 보도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줄 믿는다.

그런 태도는 도리어 신문의 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가 된다고 아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문은 특히 보도기능면에서 철저하게 사실보도를 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이는 데 배전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데 그렇지 못한 사례가 지난 주에도 있었다.

우연스런 일이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지난 12일에 있었던 유관순 (柳寬順) 열사 순국 78주기 행사를 보도한 신문은 거의 없었다.

이에 반해 TV에선 그것이 보도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는지 신문의 처지에선 난감해질 수밖에 없을 터이다.

하긴 한.일 신시대의 전개가 이야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관순 열사 관련 행사가 가치판단의 후순위 (後順位) 로 밀렸을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연례행사로 치러지는 것에 대한 뉴스밸류의 왜소화가 개연성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설령 그렇더라도 한 줄의 기사로도 그것이 보도되지 않았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한.일관계가 새롭게 전개된다 하더라도 민족정기를 선양하고 오늘의 이 나라가 있게 한 애국 선열들의 충절과 희생을 기리는 일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될 줄 믿는다.

오늘날 우리가 기리는 애국 선열은 안중근 (安重根) 을 비롯한 윤봉길 (尹奉吉) , 이봉창 (李奉昌) 등 의사 (義士) 일곱분과 함께 이준 (李儁).유관순 등 열사 (烈士) 열분이다.

'의사' 와 '열사' 에 대한 기준이나 정의는 물론 사전적인 것과 보훈 (報勳) 적인 것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말사전' 에 따르면 '의사' 란 '의와 지조를 굳게 지키는 사람' 으로 돼 있고, '열사' 란 '나라를 위해 절의 (節義) 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해 싸운 사람' 으로 풀이돼 있다.

그러나 역사적 차원과 보훈적 측면에선 사전적인 풀이와 다르다.

거기에선 '의사' 란 '애국충절의 의로운 뜻을 가지고 주로 무력이나 행동을 통해 큰 공을 세운 사람' 을 일컫는 것이고, '열사' 란 '애국충절의 의로운 뜻을 가지고 실행에 옮기거나 옮기던 중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거나 또는 미수에 그친 사람으로서 죽음으로 정신적인 저항을 보인 사람' 으로 정의하고 있다.

요즘 신문에 흔히 등장하는 '열사' 등에도 어떤 기준이나 정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이규행(언론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