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카터 ‘닮은꼴 방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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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은 지미 카터에 이어 미국의 전직 대통령으로는 15년 만에 북한 땅을 밟았다.

두 사람의 방북엔 닮은꼴이 많다.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 간 대결 국면 속에서 이뤄진 방북인 데다, 미국에서 민주당이 집권한 시기에 민주당 출신 전직 대통령의 방북이란 점이 그렇다.

카터 전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을 만난 것과 마찬가지로 클린턴 전 대통령도 방북 첫날인 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그래서 카터의 방북이 그랬던 것처럼 클린턴의 방북도 꽉 막힌 북·미 관계에 돌파구가 될 거라는 희망 섞인 관측도 나온다.

카터 전 대통령은 클린턴의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94년 6월 15일 방북길에 올라 나흘간 북한에 머물렀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특사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의 방문이었다. 훗날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영변 핵시설을 정밀 공격하는 시나리오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던 때에 김일성 주석은 카터 전 대통령에게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이 신형 경수로 건설을 도와주면 핵 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카터는 방북 이틀째인 6월 16일 아침에 전화로 백악관에 김 주석의 발언 내용을 전달하고 곧바로 CNN과 생방송 인터뷰로 내용을 공표했다. 이는 이후 북·미가 정부 간 협상을 통해 도출한 제네바 합의의 뼈대가 됐다.

카터 전 대통령은 또 귀국길에 한국에 들러 김 주석이 남북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 한국 정부는 이를 수락했다. 하지만 채 한 달도 안 된 7월 8일 김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남북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못했다.

반면 클린턴과 카터의 방북에는 계기와 목적에서 차이점도 있다.

94년에는 핵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현안 논의가 목적이었지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한에 억류 중인 여기자 두 명의 석방이란 구체적 임무를 지니고 갔다. 이 때문에 방북이 성사되는 과정에서도 순수한 개인 자격이었던 카터 방북 때와는 달리 뉴욕 채널을 통한 북·미 접촉 등 오바마 행정부의 역할이 일정 부분 작용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인도주의 사안과 북·미 간 정치·외교 현안을 분리해 다룬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여기자 문제에만 국한해 협상하고, 다른 문제에 대해선 권한을 위임받지 못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관심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한반도 상황에 미칠 영향이다. 김일성 주석이 그랬던 것처럼 김정일 위원장도 오바마 행정부에 과감한 제안을 하거나 유화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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