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 구조조정 정부 강경입장선회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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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규성 (李揆成) 재정경제부 장관이 12일 5대 그룹의 구조조정 속도 및 강도가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여신회수 등 강경 조치를 취하겠다고 재차 천명한 것은 경제팀장 자격으로 정부의 최종 입장을 명확하고 단호하게 전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지난 7일 5대 그룹이 7개 사업의 구조조정 방안을 합의.발표했을 때 이미 정부의 '불쾌감' 은 여러 경로로 표출됐으나 이를 공식화한 셈이다.

李장관의 이날 발언에서 주목되는 것은 반도체와 발전설비 부문을 특정해 '사업구조조정의 의미가 없다' 고 밝힌 점이다.

당초 정부가 문제로 지적했던 철도차량을 포함해 5개 업종의 구조조정안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적 평가를 내린 반면 문제업종으로 적시한 반도체와 발전설비에 대해서는 압박의 수위를 훨씬 높였다.

이는 관련 업종에 이해관계를 가진 개별 그룹에 대해서는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정부는 이를 통해 재계 전체를 몰아세우기보다는 재계의 합의를 어느 정도 존중해 주는 모습을 보이면서 특히 문제가 된다고 여겨지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압력수단을 총동원해 정부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그간의 '자율협의 중시' 원칙에서 벗어나 직접 개입하겠다는 방향으로 선회한 데는 외국 투자가들이 한국 구조조정의 초점을 기업구조 개혁에 두고 있다는 점도 감안됐다.

실제로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 참석했던 李장관은 많은 외국 투자가들로부터 "한국의 기업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

5대 그룹의 구조조정은 어떻게 되느냐" 는 질문을 들었다고 한다.

여기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방일 (訪日) 직전인 6일 경제장관 간담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

금융감독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가 5대 그룹의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라" 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의 구상대로 빅딜이 제대로 추진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반도체와 발전설비의 경우 해당 그룹 총수들이 경영권에 강한 집착을 갖고 있어 교통정리가 수월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게다가 재계 합의가 끝내 불발로 그치면 워크아웃에 포함시켜 퇴출 등을 유도한다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현대중공업의 경우 발전설비 부문이 전체 매출액의 5%밖에 되지않는 데다 우량기업이어서 퇴출시키기는 불가능하다.

또 반도체의 경우도 워낙 덩치가 큰 것이어서 설령 정부가 의도한대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과연 퇴출을 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박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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