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엉터리 오염측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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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공기관의 환경오염 측정치가 기관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게다가 일부지역에서는 측정기간중 오염제거제를 사용해 오염도를 조작한 사실까지 드러나 국민들이 환경관련 발표를 도무지 믿을 수 없게 하고 있다.

국립환경연구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일정농도의 오염물질이 포함된 시료 (試料) 를 전국의 지방환경관리청과 시.도보건환경연구원 등 56개 공공기관에 보내 오염도를 측정해 보고토록한 결과, 전체의 40% 가까운 21곳의 측정치가 실제값보다 30%이상 차이가 났다는 것이다.

한 환경관리청은 유해물질인 벤젠의 농도가 0.005PPM인 시료를 1백70배인 0.85PPM으로 측정했고, 어떤 하수처리장은 생화학적산소요구량 (BOD) 4PPM인 시료를 1.7PPM으로 어처구니 없는 측정치를 보고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창원시가 환경부의 쓰레기소각장 다이옥신 배출농도 조사과정에서 측정치를 줄이기 위해 조사시기 전후에 특수약품을 소각로에 투입했다는 보도다.

환경오염문제가 인간의 삶의 질 (質) , 나아가 우리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전세계가 인류의 종말까지를 들먹이며 대처방법을 찾기 위해 법석을 피우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그런데도 이 땅에서는 치료의 전단계인 병명을 알아내는 진단과정에서조차 천지를 분간 못하고 헤매는 꼴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감기정도의 환자를 중병으로 진단하거나 중환자를 감기환자로 보거나 조작한 것과 다름없다.

이러니까 치료방법이 제대로 나올리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 시급한 것은 오염측정기관에 대한 전면 점검이다.

사람이나 장비나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고서는 측정치가 1백70배까지 차이가 나는 한심스런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환경오염문제는 측정결과를 놓고 논란이 적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인 점을 감안할 때 국민들을 불안감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환경당국의 책무다.

그 첫 단추가 정확한 현상진단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컵라면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는 한 연구기관의 발표가 있을 때도 정부기관에서는 괜찮다고 했는가 하면, 수돗물에서 바이러스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대전 생명공학연구소의 발표에 대해서도 환경부는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국민들은 종잡을 수 없고 불안한 것이다.

더 이상의 오류와 조작은 결코 용납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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