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격요청'의혹 중간점검]총격요청 모의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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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판문점 총격요청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지난달 25일 안기부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아 수사를 진행해 온 지 보름을 넘겼으나 '안보사건' 이라는 이유를 들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국에 큰 파문을 일으킨 이번 사건은 특히 '고문조작' 시비까지 겹쳐 국민들 사이에 "사건의 실체가 무엇이냐" 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진행된 구속적부심과 안기부의 국회제출 보고서 등을 통해 윤곽은 잡히고 있으나 총격요청 배후나 가혹행위 여부 등은 아직도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구속된 3명에 대한 안기부의 가혹행위 여부는 1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신체감정 결과가 법원에 통보되고, 검찰도 한나라당 고발에 따라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총격요청 부분과 배후세력 존재 여부 등 핵심쟁점을 중심으로 수사상황을 중간점검해 본다.

구속중인 전 청와대 행정관 오정은 (吳靜恩.46) 씨와 대북 교역업자 장석중 (張錫重.48) 씨는 안기부에서의 진술을 바꿔 "판문점 총격을 요청한 사실도, 모의한 사실도 없다" 고 주장하고 있다.

張씨는 "한성기 (韓成基.39.구속중) 씨가 베이징 (北京)에서 북측인사를 만날 때 도중에 韓씨 요구로 자리를 비켜줬다" 고 말하고 있으며, 吳씨는 북측인사 접촉장소인 베이징에는 가지 않았다.

결국 張.吳씨 두 사람 주장을 정리하면 '우리는 총격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韓씨가 총격을 요청했는지는 모른다' 는 것이다.

그러나 북측 인사에게 총격요청 발언을 한 당사자로 안기부가 지목한 韓씨는 변호인인 강신옥 (姜信玉) 변호사에게 최근 총격요청 사실을 시인했다.

姜변호사는 "韓씨가 총격요청을 한 것은 吳씨의 지시에 따른 것인데도 吳.張씨가 기본적 사실마저 모두 韓씨에게 떠넘기고 있다" 며 세명 모두가 총격요청에 관련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姜변호사는 다만 "총격요청 수준은 '전시상황' 을 연출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4.11총선 때처럼 1개 분대 정도를 동원, 무력시위를 해달라' 는 것이었다" 며 외환 (外患) 을 불러올 정도의 중대사안이 아닌 일종의 해프닝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吳.張씨가 총격요청 관련 혐의를 계속 부인하더라도 당사자의 한 사람인 韓씨의 진술 때문에 현 단계에서는 안기부측 수사 결과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안기부는 세사람의 역할을 "오정은 = 국내에서 총지휘, 장석중 = 북측인사 연결고리, 한성기 = 직접 총격요청" 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총격요청은 해프닝 성격이 아니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국내에서 치밀한 사전모의를 거쳐 베이징에서 실행에 옮겨진 목적있는 범행" 이라는 게 안기부 판단이다.

또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증거로 吳씨가 TV 카메라 설치 등 '홍보전략' 까지 세웠던 점을 들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검찰은 이들 세사람이 북측에 총격을 요청한 부분에 대해 형법상 외환유치죄를 적용할 것이 확실시된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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