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춘란배 세계선수권] 죽음의 환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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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결승2국>

○ 창하오 9단 ● 이창호 9단

제18보(158~170)=이창호를 꺾는다는 건 언제나 비견할 수 없는 기쁨이다. 158로 한 점 잡으며 창하오 9단은 가만히 가슴을 쓸어내린다. ‘참고도 1’에서 보듯 흑1로 중앙을 파호하면 백2로 산다. 일종의 맞보기다. 드디어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하지만 이창호 9단은 천길 낭떠러지 끝에서 159란 극한의 수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창호 바둑에서 이런 자살 수법은 참 드물다. 이상한 나라에 온 듯한 낯선 느낌마저 준다. 160으로 한 집을 내며 창하오는 숨을 죽인다. 간단치 않은 사활이다. 자칫하면 곧바로 황천길이다.

이창호 9단이 161, 163으로 끊어 집을 없애면서 분위기는 점점 더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 벼랑 끝에 선 이창호의 움직임이 마치 자객처럼 고요해 구경꾼들은 문득 ‘죽음’의 환영을 본다.

창하오는 164부터 170까지 전력을 다해 밀어붙이고 있다. 육감적으로 ‘죽지 않는다’는 느낌은 있다. 그러나 확실하게 사는 수가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더구나 초읽기 상황이어서) 불안한 그림자가 떠나지 않는다. 자, 이제 ‘참고도 2’ 흑1로 파호하면 어찌 되나. A가 선수여서 흑의 포위망은 허물어지지 않는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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