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조상모시기]종가,얼마나 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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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서울에 거주하는 전종원 (51.텔슨전자 전무) 씨는 해마다 추석을 맞으면 고향인 전주로 내려간다.

그는 "큰집 (사촌형) 이 5대 장손이어서 추석이면 당연히 큰댁에서 차례를 지낸다" 고 말했다.

천안 전씨 도평군파의 후예라고 밝힌 전씨에게 종가 (宗家) 란 바로 '큰댁' 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는 "문중의 대종가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 고 했다.

70년대 산업화 이후 본격적인 핵가족시대를 맞은 우리나라는 오랜 유교적 전통에도 불구하고 씨족개념이 급속도로 사라졌다.

50대에 들어선 전씨의 경우에도 "사촌들과 만나기도 힘이 든다.

어쩌다 생각나면 전화 정도로 안부를 물을 뿐" 이라고 했다.

더구나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아들의 경우에는 이미 형님의 아이들인 그들의 사촌 간에도 "추석에 잠깐 얼굴을 보는 것으로 혈연관계를 확인하는 것 같다" 고 덧붙였다.

이런 사정은 40대 초반인 이우화 (41.회사원) 씨의 경우에도 다름이 없다.

그는 연안이씨의 후예로 종가가 경남 거창에 있다는 것만 알고 있다.

이씨 역시 사촌형이 집안의 장손이지만, 부산에 거주하는 까닭에 차례에도 참여하지 못한다고 했다.

30대 초반의 김모 (31.제일은행) 씨는 안동김씨 △△파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갔다.

그는 "종갓집이라고 해서 특별히 하는 것도 없다. 심리적 부담만 느끼고 있을 뿐" 이란다. 한걸음 나아가 김씨는 "종가의 멍에를 벗어버리려고 딸 낳기를 기대했지만 아들 하나를 두게 됐다" 고 불만어린 심정을 토로했다.

김씨는 "종갓집이란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며 사람들에게 허울만 씌워 놓는 낡은 유습" 이라고 힐난했다.

종가란 "가풍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조부.증조부.고조부까지의 제사를 모시는 종손 집안을 가리킨다" 고 성균관 양홍렬 (65) 전례연구위원은 설명한다.

'나' 를 기준으로 부모와 조부.증조부.고조부 4대까지 올라가면 8촌의 친척이 형성된다.

"과거에는 8촌까지 상복을 입었다. 말하자면 8촌까지가 본종 (本宗) 이고 이를 넘어가면 일가 (一家) 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8촌의 개념조차 희미해졌다" 고 안타까워 했다.

종가 - .과연 이 시대의 '낡은 멍에' 인가, 아니면 회복해야 할 좋은 풍습인가.

최영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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