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추석연휴 풍경]조상찾아 자기점검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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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가수 김창완씨에게 올 추석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지난 여름 돌아가신 아버님의 첫 차례를 치르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불교를 믿으셨고, 동생 (창훈) 은 기독교지만 본인은 특별히 믿는 종교가 없어 전통 방식으로 차례를 치를 생각이다.

처음 맞는 차례라 상 차리는 법, 절 하는 법을 몰라 책을 사서 연구 중이다.

제주 (祭主) 로서 첫 차례를 잘 치러 아버님을 흐믓하게 해드리고 싶은 것은 물론 살아 생전 아버님과 관련된 일을 떠올리며 현재 자신의 위치를 숙고하려고 한다.

추석은 무엇보다 조상을 기리는 명절. 성묘든 차례든 그 귀결점은 조상으로 모아진다.

조상의 의미는 단순히 과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자기를 점검하는 반성의 자리로 승화된다.

그리고 그 조상은 단지 '선조' 에만 그치지 않고 선조와 관련된 물건이나 공간과도 연결된다.

시인 안도현씨도 추석을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이번에 본가가 있는 경북 안동으로 내려간다.

장남이라 차례도 지내고 일가 친척에 인사도 드려야 한다.

하지만 그는 "올 추석에 정말하고 싶은 일이 꼭 하나 있다" 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다녔던 안동시 풍산면을 둘러보는 일이다.

그 동네를 떠난지 20년이 넘도록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것. "내가 어릴 때 보았던 골목길과 담.나무.학교운동장 등을 꼭 한번 보아야겠고 아마 그런 가운데 시의 소재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 "

그는 유년 시절 경험을 되살려 시작 (詩作) 과 연결하는 한편 그곳에 함께 서려있는 부모님의 체취를 찾아 37살의 인생을 중간정리할 작정이다.

'세기말 블루스' 의 여류 시인 신현림씨는 책을 통해 조상의 지혜를 살펴볼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것은 다른 아닌 조선시대 문인 허균이 남긴 수필집 '한정록 (閑情錄)' 을 읽는 일. "여유로운 삶의 길, 물러남의 지혜, 청산에 사는 즐거움 등이 '한정록' 에 그대로 담겨있다.

되도록 꼼꼼히 읽어 행간 속의 숨은 의미까지 간파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거덜난' 나라경제에 우왕좌왕하는 사람들도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 그는 추석 당일 날엔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집에 가 친척을 만날 생각이다. "추석은 돌아가신 이들과 상면이라는 뜻도 있지만 역시 살아있는 이들과 만나는 즐거움이 앞선다" 고 덧붙였다.

한편 도서출판 자작나무의 최청수 대표는 처가 식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싸가지고 임진각에 가려 한다.

단신 월남해 온갖 고생을 하신 장인을 모시고 그의 가슴 속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망향의 한을 풀어주려 한다.

현재 사우디 건설현장에 파견나가 있는 처남을 대신해 장인의 아들 노릇을 할 계획. 분단이란 상황 탓에 가까이서 조상을 모시지 못하는 장인의 아픔에 동참하는 동시에 평소 사위로서 다하지 못한 효를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영화제작사 '기획시대' 의 유인택 대표도 박광수 감독의 신작 '이재수의 난' 이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 매우 바쁜 가운데도 병으로 입원한 아버님을 간호하며 그동안 소홀했던 부자지정 (父子之情) 을 나누려고 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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