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지금 1위는 페이스메이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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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금은 1위보다 2위가 낫다.”

2009 프로야구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상위권 혼전이 이어지고 있다. 후반기 시작하자마자 1~3위인 SK와 두산·KIA의 순위가 매일 바뀌는가 하면, 4~5위 롯데와 삼성도 4강을 넘어 선두권 진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30일 현재 선두 SK와 5위 삼성은 4경기 차에 불과하다.

후반기 첫날인 28일 한화전에서 승리해 하루 동안 1위를 되찾은 김경문 두산 감독은 “지금 선두는 선두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김 감독의 말이 ‘겸손’은 아니었다. 경쟁이 워낙 치열한 상황에서 선두로 나섰다가는 오히려 자기 페이스를 잃기 쉽다는 얘기다. 김 감독은 “현 상황에선 선두를 바짝 뒤쫓는 2위가 오히려 마음 편할지도 모른다. 선두에 오른 이상, 누구나 그 자리를 지키고 싶어한다. 그러다 무리할 수 있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상위권 3개 팀뿐 아니라 롯데와 삼성까지도 현재 중요한 건 순위가 아니라 페이스 유지라는 말을 하고 있다. 5개 팀이 하루 사이에 순위가 바뀔 처지에 있기 때문에 부상을 방지하고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의 1위는 그저 가장 앞에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현재 선두는 마라톤이나 쇼트트랙 장거리 등에서 볼 수 있는 ‘페이스메이커’에 가깝다. 이들은 레이스 중반까지 맨 앞에 서서 기록의 기준을 만들고, 우승 후보인 동료의 페이스 조절을 돕는 역할을 한다. 페이스메이커는 레이스 후반엔 뒤처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기는 게 싫을 리는 없다. 일부러 질 수도 없다. 순위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상위권 팀들은 마치 포스트시즌 같은 단기전처럼 팀을 운영하고 있다.

김성근 SK 감독은 “이기고 있는 경기를 지키기 위해 선발 투수라도 동원하겠다”고 공언한 뒤 29일 히어로즈전에서 선발 요원 고효준에게 세이브를 맡겼다. 김경문 감독 역시 29일 한화전에서 평소 7~8회에 등판하던 셋업맨 임태훈을 4회에 조기 등판시켰다. 그렇다면 얼마나 앞서나가야 기분 좋은 1위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경문 감독은 “어느 팀이든 5경기 차로 앞서 있으면 선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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