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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법 처리 지연에 미소 짓는 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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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해 11월 정부는 더 내고 덜 받는 것을 내용으로 한 연금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 통과를 낙관하고 법의 시행일을 올 1월 1일로 못박았다. 개정안은 공무원의 월급(과세소득 기준)에서 떼는 돈을 현행 5.5%에서 2012년에는 7.0%까지 올리도록 했다. 금액 기준으로는 27% 인상이다. 받는 연금액은 근속연수와 급여에 따라 최고 25%까지 줄어든다. 예를 들어 20년 근무한 5급 공무원(월소득 377만원)은 현재 매달 20만8000원을 내고, 10년 뒤 그만두면 169만원씩 받는다. 그러나 개정안이 적용되면 28만2000원(2012년)을 내고, 158만원을 받게 된다.

정부가 법을 손질하기로 한 것은 공무원 연금의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올해 예상 적자는 1조99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5000억원 많다. 내년에는 2조3000억원으로 불어난다. 연금을 받는 사람이 증가하고 이들의 수명도 길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정안은 시행 예정 시기를 7개월이 지나도록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국회의원들은 “공무원의 고통 분담이 미흡하다”며 호통쳤다. 하지만 정쟁에 몰두하는 사이 연금법은 안중에 없었다. 6월 임시국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은 ‘세종시법’을 두고 싸움박질만 하면서 뒷전으로 미뤄뒀다. 행정안전위원회의 법안소위를 통과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문제는 국회가 법안을 처리하지 않은 동안 연금 적자가 매일 12억원씩 추가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연금 적자가 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 내야 할 몫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박수를 보낸다. 한편에선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고 대거 명예퇴직한 공무원들이 후회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들은 정부를 믿고 연금이 줄어들기 전에 앞당겨 사표를 쓰는 바람에 근무 기간이 짧아지는 불이익을 봤다. 특히 지난해 말 명예퇴직한 교육공무원은 6116명으로 그 전해보다 2800명이나 많았다.

이대로 연말까지 가면 4200억원의 적자가 추가로 쌓인다. 연봉 2000만원짜리 직장인 2만 명을 한 해 동안 고용할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공무원 연금의 적자는 전액 정부가 보전해 주도록 법에 정해져 있다. 국민이 낸 세금에서 채워준다는 이야기다.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하도록 국민이 뽑아준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세금을 축내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는 직무유기이자 명백한 배임 행위다. 국민이 불쌍하다. 자신의 주머니에서 세금이 더 나가는 줄도 모르고, 국회의원들이 땡땡이치는 줄도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김상우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