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의 ‘사면’ 언급 신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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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라디오 대담에서 150만 명 규모의 대규모 8·15 특별사면 계획을 밝혔다. 농민·어민·자영업자 등 서민이 대상이 되는 ‘생계형 사면’이며 특히 ‘생계형 운전’을 하다 운전면허가 정지된 이들도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청와대에서는 음주운전 초범자도 사면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역대 대통령들은 수백만 국민을 상대로 대규모 특사를 종종 단행해 왔다. 자신의 취임 기념일이나 국경일을 맞아 대부분 서민 계층이 혜택을 보는 특사를 시행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고 국민의 화합적 분위기를 고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대규모 특사는 김영삼 1회, 김대중 2회, 노무현 1회 있었다. 이 정권 들어서는 지난해 취임 100일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교통법을 비롯한 각종 법규의 위반자 중에는 다수가 서민층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특사는 이들의 생활에 실질적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에서는 운전면허 취소 같은 제재가 적잖은 제약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특사는 본질적으로 차별적 조치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많은 이가 법규를 지키느라 애를 쓰는데 법규를 어긴 사람을 주기적으로 사면해 주면 형평에 맞지 않다. 그리고 “제재를 받아도 얼마 안 있어 사면될 것”이라는 풍조가 생기면 준법의식은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대통령의 사면권은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신중하고 엄격하게 행사돼야 한다. 더군다나 대통령은 최고 행정책임자다. 그의 1차적 의무는 사면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것이다. 그런 대통령이 나서서 사면을 적극적으로 언급하는 건 공동체의 법질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는 친(親)서민적인 정책에 애쓰고 있다는 걸 홍보하고 싶겠으나 ‘친서민’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법과 질서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생계형’이라는 표현도 신중히 사용돼야 한다. 생계형과 비(非)생계형의 구분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뿐더러 자칫 ‘생계’라는 이유로 많은 것이 용인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