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성형 하층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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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85만5900원 대 742만5100원.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하위 20%와 상위 20%의 월평균 소득 명세다(2009년 1분기 기준). 경제 위기 와중에도 상위권의 수입은 오히려 늘고 하위권은 벌이가 줄어 지난해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1990년대 이후 확대일로였던 세계 각국의 빈부 격차가 이번 위기로 한층 악화되리란 게 국제노동기구(ILO)의 경고다. 경제성장의 단물은 주로 고소득층에 돌아간 반면 경제 침체의 쓴 물은 대개 저소득층이 들이켜게 돼 있어서다. 범죄율이 높아지고 평균 수명이 짧아지는 등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도 만만찮을 조짐이다.

그뿐만 아니다. 소득 양극화의 여파는 예상치 못한 곳까지 미칠 수 있다. 이른바 ‘외모의 양극화’다. 요즘은 미모가 유전자보단 재력에 좌우되는 탓이다. 부자들은 예뻐지고 젊어지고자 월 수백에서 수천만원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보톡스는 기본. 레이저 박피 시술에다 필러 주사도 구석구석 맞아댄다. 열 살 아래 과장 마누라보다 이사 사모님이 어려 보이는 건 그래서다. 반면 성형 비용을 댈 수 없어 원래 생긴 대로, 나이대로 살아야 하는 계층도 있다. 미국의 미래학자 페이스 팝콘은 2001년 저서 『미래 생활 사전』에서 이런 부류를 ‘성형 하층민(cosmetic underclass)’이라 지칭했다. 못생긴 것도 억울한데 돈이 없어 고치지도 못하니 이보다 더 서러울 수 없다.

신기술의 등장과 함께 전 세계 성형수술 시장 규모는 300억 달러(약 37조원)를 넘어 해마다 급성장 추세다. 지난해 미국에서 이뤄진 수술만 1170만 건이다. 10년 전에 비해 2.5배로 늘었다. 우리나라도 결코 그에 못지않다. 어림잡아 여성 세 명 중 한 명이 한 번 이상 성형수술을 받았다 한다. 입사 면접에 대비해 ‘취업 성형’을, 결혼을 앞두곤 ‘혼수 성형’을 하는 게 대세다.

특히 요즘 같은 휴가철과 방학이면 “넌 놀러 가니? 난 예뻐진다”라며 성형외과에 발길이 몰린다. 사교육비에 이어 성형수술비까지 대야 하는 부모는 등골이 빠진다. 또 다른 ‘군비 경쟁’이다. 하지만 별 도리가 없다. 외모 지상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더 강력한 이데올로기인 시대에 ‘성형 하층민’에 머물다간 취업·결혼시장에서 딱지 맞기 십상 아닌가. 소득과 외모 양극화가 물고 물리는 악순환의 세태가 딱하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