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은 오는가]상.해법은 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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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세계 경제위기의 극복을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 (共助)가 제대로 이뤄질 것인가.

미국이 최근 빌 클린턴 대통령의 경제위기 공동대처 제안을 통해 냉전 종식이후 사실상 내팽개쳐온 지구촌 경제의 맏형 역할을 다시 하겠다고 나선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글로벌 경제시대인 만큼 현재의 위기는 주요국들이 머리를 맞대지 않는 한 해법이 나오기 어렵게 돼있다.

그러나 각국의 경제정책 공조가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우선 기관차격인 미국의 내부 사정이 그리 만만찮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 의장은 클린턴 대통령의 선진국 공동 금리인하 제안 발언이 나온 며칠 뒤 "선진국 중앙은행들간에 금리인하를 위한 공조노력이 현재로선 진행되지 않고 있다" 고 어깃장을 놓았다.

세계의 경제위기가 미국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점을 FRB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간 사정이 너무 틀려 구체적인 공조작업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제통화기금 (IMF) 추가출연 등 의회 승인이 필요한 문제와 관련, 성추문으로 지도력에 타격을 입은 클린턴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어느 정도 의회의 협조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인지도 의문이다.

독일도 오는 27일로 임박한 총선과 내년 1월 1일 유럽경제통화동맹 (EMU) 출범을 앞두고 세계 경제위기 탈출을 위해 총대를 메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러시아에 대한 대규모 지원 때문에 가뜩이나 여론이 좋지 않은 판에 '인플레 박멸' 이라는 전후 (戰後) 최대의 공약을 위태롭게 할 금리인하가 달가울 리 없다.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도 유럽의 인플레 위험을 이유로 금리인하에는 반대입장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일본은 자국의 경제위기 때문에 밖을 돌아볼 겨를이 없고, 금융개혁.내수진작 등 시급한 국내 현안에 대해서도 이러쿵 저러쿵 장담할 처지가 못된다.

세계 각국은 현재의 경제위기를 서로 다른 프리즘을 통해 보고 있다.

보통때 같으면 그리 문제랄 게 없겠지만 지금은 비상시기다.

결국은 냉전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금리인하가 됐건, 새로운 금융시스템의 구축이 됐건 미국이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다른 나라들이 끝까지 거부하기는 어렵다.

미국이 그동안 누려왔던 1인 독주의 즐거움을 접어두고 더 큰 대의 (세계경제 회복) 를 위해 일정 부분 손해를 감수할 각오만 있다면 세계 경제위기의 극복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뉴욕 = 김동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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